고객센터

customer center

070.8868.6303

영화평론지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앨런 J. 파큘라의 <대통령의 음모>와 올리버 스톤의 <닉슨>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과 증발한 VIP의 7시간과 늘 반복되는 정경유착의 짓거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입가경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사태의 초반부, 농담인 듯 진담처럼 들었던 얘기는 기획 개발 중이던 한국형 정치·권력 스릴러 프로젝트들이 전부 잠깐 멈췄다는 거였다. 현실이 픽션보다 황당하여 창작자들이 당황했기 때문이겠지. 우리가 그간 시나리오에 너무 공을 들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 ‘꼭두각시 대통령 뒤에 무당 일족이 있었고, 비리의 증거가 될 단서는 그들이 보란 듯이 버려놓고 간 태블릿PC에 들어 있었다.’ 작가가 이렇게 시나리오를 쓰면 회사에서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퇴짜를 놓을 B급, C급 플롯. 그런데 그게 현실이었네?

아무리 공들여 짠 스토리라도 눈 높은 관객이 보고 피식 웃어버리면 망하는 업계, 현실이 준 것은 경외감이 아니라 모욕감. 울화통 터진 민심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거의 매일 나오는 요즘 들려오는 소문은, 아예 이번 사태를 영화화한다는 것. 모든 것을 영화로 만드는 이 매체가 가만히 둘 소재는 아니다. 현실로 충분히 괴롭게 보고 있는데 뭐 하러?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굳이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면,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까?

현실을 영화로 만들 때는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뜨거운 냉정이고, 다른 하나는 차가운 동정(同情)이다. 전자는 사건에 집중한다.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으로, 오직 사실만을 가지고 사건을 다룬다. 그러나 현실의 폭로는 뚜렷한 목적의식과 사명감을 필요로 하므로 작가와 작품의 태도는 뜨거워야 한다. 후자는 인물에 집중한다. 나름의 주관적인 해석으로, 한 인간에 대한 캐리커처를 위해 가능한 표현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며, 상상까지 동원한다. 그러나 그 인간을 인간 이상(이하)의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되기에 작가와 작품의 태도는 차가워야 한다. 뜨거운 냉정으로 만든 영화가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연해 보여준다면, 차가운 동정으로 만든 영화는 인물을 이야기로 가공하여 들려준다. 앞의 영화는 관객을 각성시키고, 뒤의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할 몫을 남긴다. 지금 이 세계에 대한 각성, 그리고 우리 인간에 대한 생각.

진실을 냉정하게 추적하는 <대통령의 음모>
앨런 J. 파큘라의 <대통령의 음모>(1976)는 백지에서 시작한다. 백지 위에, 타자기의 활자판으로 날짜를 찍는다. 잉크로 찍힌 날짜는 일어난 사실이고, 그래서 지울 수 없는 역사다. 이어서 TV 화면의 기록영상, 헬기에서 내려 국회에 들어선 대통령은 각료들과 함께 연단으로 걸어간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활짝 웃는 닉슨 대통령의 모습 다음의 컷은 어둠이다. 건조하게 오프닝 크레딧이 천천히 뜨고 사라지는 어둠 속에서, 짤깍짤깍… 몰래 열쇠를 따는 소리가 들리고 어느 건물에 수상한 남자들이 침입한다. 닉슨을 결국 탄핵과 하야로 몰고 간 워터게이트 사건의 시작이다. 사건사고 담당기자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퍼드)는 워터게이트 호텔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한 좀도둑들을 취재하러 갔다가 뭔가 이상한 광경을 본다. 좀도둑들에게 직업이 뭐냐고 묻자 ‘반공주의자’라고 대답하고, 또 전직 CIA 요원이었던 자가 끼어 있다. 뭘 훔치기엔 수중에 지닌 돈이 많다. 그들 수첩엔 백악관 특별 보좌관의 이름이 적혀 있고, 벌써 나타나 앉아 있는 피의자쪽 변호사는 질문도 안 했는데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거 조사해봐야 해요, <워싱턴 포스트>에 입사한 지 9개월인 신참내기 밥이 물어온 요상한 사건을 편집부 데스크는 정치부로 넘기는 대신 밥에게 동료 기자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먼)을 붙여준다. 파트너가 된 둘은 권력의 음험한 진실을 밝히는 일을 시작한다. 이들이 딱히 정의로운 인물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언론인이란 직업을 가졌기 때문이다. 영화는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사건과 취재 과정이 중요하므로 두 캐릭터에 관객이 감정적으로 파고들만한 개인적인, 감정적인 에피소드 같은 것은 보태지 않았다. 둘은 영화 내내 일만 하고 서로 일 얘기밖에 나누지 않는다. 취재도중 밥이 자신도 공화당 지지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칼은 그때 처음 알았다는 듯 놀라서 그를 쳐다본다. 그러나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이입한다. 사건이 향하는 진실이 궁금하고, 그 세계에 자신들이 실제로 속해 있기 때문이다.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7-01-03

조회수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