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 종교적 심층 진리의 부재
박태식 신부(영화평론가, 성공회대 교수)
모든 종교는 나름의 독특한 신비체험을 갖고 있다. 거룩한 세계와 평범한 인간 세상이 신비한 방법으로 겹치면서 지평의 섞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경험을 했다고 하며(마가 1,9-10),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는 고백을 여러 번 했다(갈라 1,15-16;1고린 9,1;15,5-8). 종교적인 신비체험은 비단 그리스도교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다. 무함마드, 붓다, 그리고 접신이 이루어져야 굿을 하는 무당에까지 이르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범위에서 신비체험이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모든 종교에서 신비체험이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주장, 즉 한 종교와 신의 영역이 맞닿아 있다는 자부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내가 체험했다는데 왜 토를 달아!’라는 막무가내 식의 논리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상에서도 사이비 종교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는지 모른다. 이런 현상을 두고 종교학에서는 흔히 인간 영역에 대한 초월 영역의 간섭(repture de niveau)이라 부른다. 아무튼 어느 종교에서든 신비체험이란 가장 매력적인 요소일 수밖에 없다.
가톨릭교회의 오래된 전통인 구마驅魔의식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한 사람의 종교인으로서 필자의 흥미를 확실하게 끌어내는 소식이었다. 구마라 하면 사람에게 들린 귀신을 내쫓는다는 뜻인데 과연 어떻게 이를 영상으로 표현해낼 것인지 궁금했던 게 첫 번째 이유였다. 다음으로 구마의식을 통해 종교적인 가르침을 얼마나 잘 표현해 내는가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마침 2014년 전주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단편영화 <열두 번째 보조사제>(장재현 감독, 극영화/공포, 한국, 2014년, 26분)를 장편으로 만들었다기에 상당한 기대감도 있었다.
영화 <검은 사제들>(장재현 감독, 극영화/공포, 한국, 2015년, 108분)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톨릭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인 김 신부(김윤석)는 축귀·구마의 은사를 받은 사제다. 본인 스스로 원해서라기보다 스승 신부의 선택으로 그리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서울에 강력한 힘을 가진 귀신이 나타나 중학생 소녀(박소담)의 몸으로 들어간다. 김 신부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보조 사제를 여럿 구했으나 모두 제풀에 도망쳤고 드디어 서울교구 대신학교에서 최 부제(강동원)를 만나 짝을 이룬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도입부에 갖가지 이야기가 들어있기는 하나 결국 이 모든 난리법석은 한 지점에 집중된다. 김 신부와 최 부제가 드디어 구마의식을 시작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 구마의식은 매우 오랜 전통이다. 예수님 앞에 귀신 들린 사람이 나타나면 우선 예수님이 귀신의 이름을 묻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귀신은 괴성을 내지르면서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키며 스스로 물러나거나(마가 9,14-28), 끝까지 나가기를 거부하다가 요란하게 끌려 나오거나(마가 1,21-28), 또는 다른 존재로 옮겨가는 경우도 있다(마가 5,1-20). 예수님의 구마 기적으로 귀신들렸던 사람들은 모두 정상으로 돌아오게끔 되어있다. 이 같은 복음서의 기적사화를 토대로 ‘구마예식서’가 만들어졌고 사제는 예식서 경본에 따라 의식을 진행한다. 구마의식은 그 뒤로도 계속 이어져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었고 요즘도 심심치 않게 구마의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곤 한다. 올해 초 언론보도에는 필리핀에서 구마사제들이 대거 필요해 양성에 들어갔다고 하며 이태리 시골에선 무슨 변고가 생기면 으레 사제가 나서 구마의식을 치러준다고 한다.
가톨릭교회에서 구마의식을 할 때면 우선 주교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보조사제와 같이 진행해야 하며 의식 중에 반드시 정신과 의사를 동반해야 한다. 영화에서도 의사(김병옥)가 문밖에 항시 대기 중인 상황이 펼쳐진다. <검은 사제들>이 상당한 조사를 거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최 부제는 어릴 때부터 지녀온 마음의 큰 상처가 있다. 동생이 위험에 빠졌는데 비겁하게 도망쳤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죄의식을 씻어내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와 사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최 부제에게 교회는 일종의 도피처였던 것이다. 귀신은 이를 적절하게 노려 공격을 하고, 성직자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 최 부제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어서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는 과정이 그려지고 드디어 최 부제는 축귀의 은사를 받은 진정한 사제로 거듭나게 된다. 감독이 흔치 않은 주제를 택해 영화를 만든 점은 칭찬할 만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예상 가능한 과정과 교과서적인 결론에 도달한 게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평범했다는 뜻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심령 스릴러를 만들 요량이면 공포 효과를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검은 사제들>의 특수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귀신의 능력이 보다 강력하고 파괴적이어야 옳은데 제작비 문제인지 감독이 가진 상상력의 한계 때문인지 영 시원치 않았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이태리 사제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서울 정동에 있는 성공회대성당이었다는 점은 시작부터 영화의 허점이 드러나게 만들었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실망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투 샷에서 장면을 바꾸어 성당의 제대 쪽을 보여주지 않는 게 나을 뻔 했다.
다음으로 김 신부와 최 부제가 구마의식에 들어가기에 앞서 무당이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감독의 의도가 불분명했다. 무속신앙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김 신부가 무당의 신통력을 인정하는 대목은, 귀신이 바로 적그리스도이며 예수님이 구마 기적을 통해 악의 세력을 무력화시켰다는 전통적인 성서의 가르침에 어울리지 않았다. 이는 물론 가톨릭교회 전통에도 어긋나는 설정이다. 그렇다면 무당도 마치 예수님처럼 자유자재로 귀신과 접촉하고 쫓아낼 수도 있다는 뜻 아닌가? 재미를 주려는 목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왜곡해선 곤란하다. 그리고 웬 당치도 않은 라틴어는 그리 많이 사용하는지. 라틴어만 거룩한 언어로 보았던 전통은 가톨릭교회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더더욱 영적 존재인 귀신이 우리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고 말이다.
<검은 사제들>의 예고편을 보기 전부터 이 영화가 윌리엄 프리드킨이 감독한 <엑소시스트1973>와 안소니 홉킨스가 주연한 <더라이트2011>의 재판再版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래서 두 영화와 비교해가며 <검은 사제들>을 보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필자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밖에 없다. 감독은 주제에 대한 연구와 영화 연출 공부에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단편을 장편으로 만들려면 보다 복합적인 구조와 유려한 이야기로 확장시켜야 한다.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단편과 장편은 영화 문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특히 <엑소시스트>처럼 분명한 비교 거리가 있는 경우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종교의 심층 진리도 파악해내지 못한 상태에서 무리한 시도를 해서는 곤란하다. 김윤식과 강동원 등 특급 배우들만 나오면 어떻게든 흥행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도박은 적절치 않다. 작품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배우가 나온들 평범한 영화가 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일간지에선 필자와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해 “검은 사제들은 장편다운 부피와 호흡, 밀도와 템포를 증명해 드문 성공 사례로 남을 것 같다”고 평했다. 일간지 기자가 그렇게 칭찬해마지 않는 부피와 호흡과 밀도와 템포를 아쉽게도 필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어느 쪽이 맞는지 직접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가톨릭잡지 『영성생활』에 실렸던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