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버스터즈>, 젠더 스와핑과 미러링 전략의 실험
정민아(영화평론가)
1984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를 사로잡았던 <고스트버스터즈>는 한국에서도 신드롬을 일으키며 크게 성공했다. <고스트버스터즈>의 등장은 호러가 SF, 코미디와 합쳐지고, 이것이 액션을 넘어 블록버스터의 변이 생성을 보여준 사례로 기억된다. 유령이 전혀 무섭지 않고 귀엽기만 한 독특한 호러 SF 코미디 장르를 개척한 <고스트버스터즈>는 32년 전 일이라 까마득하게 느껴지지만,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던 사람도 ‘고스트버스터즈’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다. 유령 잡는 4인조 남성 멤버들이 신나게 "고스트버스터즈"라고 외치며 시작하는 주제곡과 귀여운 유령금지 표시, 그리고 먹깨비 유령과 마시멜로맨 등이 그것이다.
오리지널 영화의 제작자이자 원작의 감독인 이반 라이트만이 2016년에 리메이크된 <고스트버스터즈>의 제작을 맡았으며, 오리지널 영화의 상징들이 새롭게 리부트되었다. 영화는 오리지널의 속편이 아니라 등장인물과 제작진을 완전히 바꾼 새로운 영화로써 리메이크에 가깝다. 이야기 구조와 등장하는 유령과 소품 등은 오리지널에서 가져오지만, 새로운 버전의 <고스트버스터>가 도입한 새로움은 바로 캐릭터들이다. 유령 잡는 4명의 주인공들을 모두 여성으로 교체한 것이다.
여성을 액션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코미디 액션 첩보영화 <스파이>(2015)로 성공한 폴 페이그 감독이 새 버전의 연출을 맡았고, 그와 앙상블을 이루며 코미디언 배우로 우뚝 선 배우 멜리사 맥카시, SNL의 스타 코미디언 크리스틴 위그와 케이트 맥키넌이 등장한다. 마지막 4번 째 멤버는 흑인여성 레슬리 존스다. 이는 최근 할리우드에서 불고 있는, 남녀 성별을 교환하는 ‘젠더 스와프(gender swap, 성별 교환)’ 바람과 관련이 있다. 다인종 묘사가 현실적일뿐만 아니라 다문화주의가 보편적 일상의 문화가 된 현재 주류 상업영화에서 주요인물 구성에 대한 성적, 인종적 배려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는 전형적으로 묘사되는 성 역할을 바꾼 작품으로 팬들의 일대 논쟁의 영역으로 끌려왔다.
물리학 박사 에린(크리스틴 위그)은 과거 초자연적 존재에 대해 쓴 자신의 책 때문에 교수직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과거 자신과 함께 유령을 연구했던 친구 애비(멜리사 맥카시)를 찾고, 뛰어난 엔지니어 홀츠먼(케이트 맥키넌)과 함께 유령 퇴치 전문 사무소를 꾸린다. 이들은 멍청하지만 미모는 뛰어난 남자 케빈(크리스 헴스워스)을 비서로 채용하고 뉴욕 지하철역에서 일하던 패티(레슬리 존스)를 동료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각자 개성 있는 인물들이 모여 ‘고스트버스터즈’란 유령 퇴치단을 구성하고 뉴욕 도시를 맹활약하는 유령들과 대결하는 스토리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원작의 향수를 기대하는 관객, 그리고 원작을 보지 못했지만 그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새로운 세대를 동시에 겨냥하기 위해, 원작의 상징과 이야기 구조를 가져와서 여성 4인조 멤버를 구성한 전략은 성공할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국에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훨씬 더 큰 화제가 되었다. 영화 텍스트 자체에 대한 해석 이전에 사회의 페미니즘 논쟁과 결합되어 뜨거운 비판의 중심에 놓였다. 특히 영화에서 쟁점이 된 부분은 4명의 유능한 여성 멤버들과 잘 생겼지만 무식하고 귀여운 남자 비서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았던 기존 성 역할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미러링 전략이다.
이처럼 고정된 성 역할을 뒤바꾸며, 흑인 캐릭터의 입으로 직접 내뱉는 흑인 비하 발언을 유머 코드로 쓰고, 천재적 여성 물리학자가 잘 생긴 남자에게 들이대다 머쓱해지는 장면의 연발, 많이 뚱뚱한 여자가 팀의 리더이거나, 심하게 괴짜인 여성 과학자의 존재 등 많은 코믹 요소들이 배치된다. 이러한 요소들이 인위적이거나 비하적으로 보인다는 반응이 영화를 공격하는 주요 포인트였다. 하지만 영화에는 과잉성과 노골화된 자책이 코미디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전복적 힘을 발휘하는 에너지가 분명 존재한다.
한쪽 성의 비하가 성 평등은 아니라며 이 영화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관객이 많지만(특히 남성 관객을 중심으로), 필자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코미디가 가진 특유의 패러디 정신과 과잉을 통한 전복성에 주목한다. 걸출한 센 언니 코미디언들의 활약이 통쾌하고 멋지며, <토르: 다크 월드>(2013)의 히어로 크리스 햄스워드의 무식한 금발 미남 캐릭터 역할은 허를 찌르는 엄청난 웃음 코드가 된다. 상대 성을 향해 분노를 폭발시키는 미러링 전략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기에, 판타지 영역인 영화에서 실현함으로써 감정 저장고에 쌓인 분노와 광기를 발산시킬 수 있다. 똑똑하고 미모가 떨어지는 여자와 멍청하고 예쁜 남자의 구도는 기존 영화의 성 역할 구도를 반성하게 하고, 힘 세고 무식한 자신을 과시하는 흑인여성의 행동은 사회에 만연한 인종적 편견을 정확하게 공략한다. 이는 보는 이의 잠재의식을 들추어 스스로 성찰하게 하는 공격적 힘을 발휘한다.
한국에서도 지난 5월 강남역 살인사건과 7월 넥슨 성우 교체 사건을 거치며 상대 성을 향한 ‘혐오’가 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등장하였다. 이와 함께 페미니즘을 새롭게 인식하고 배워나가는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뉴페미니즘을 둘러싼 수많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는 최신 이슈를 반영하는 매개 텍스트이며, 가장 대중적으로 논쟁을 펼칠 수 있는 주요한 텍스트 대상이다. <고스트버스터즈>은 페미니즘, 혐오, 미러링 논쟁의 한 가운데서 흥행 부진이라는 결과로 더 이상을 속편을 제작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2016년 현재 젠더 논쟁 공간에서 중요한 영화로 역사화되었다.
할리우드는 1984년에 히트한 인어공주 이야기의 현대판 변형인 <스플래쉬>의 리메이크는 배역의 성별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남성 인어가 등장하고, 여자 주인공이 사람으로 로맨스를 나눌 것이다. <엑스맨>도 휴 잭맨이 연기해온 울버린을 여성 울버린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터프하고 영리한 남자 주인공과 섹시하고 순진한 여자 주인공으로 스테레오 타입화되어 있는 커플링을 바꾸는 방식은 새로운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성 역할에 길들여진 고정 관념을 반성하며 인식의 확장을 꾀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고스트버스터즈>의 중요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