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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데드풀-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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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 마블의 영리한 선택
정지원(영화평론가)

 

 

‘데드풀’은 슈퍼히어로 전쟁으로 치열한 할리우드 영화시장에 ‘새로움’이란 화두를 던진 작품이다.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의 흥행공식을 뒤집으며 성공했고 이로 인해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오판’으로 인한 일대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마블(정확히 말해 ‘데드풀’은 마블코믹스에서 만든 캐릭터지만 판권 문제로 20세기 폭스사가 영화화했음)은 ‘데드풀’의 성공으로 향후에도 슈퍼히어로 캐릭터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이로 인해 경쟁사 DC코믹스(영화를 만든 회사는 DC의 모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워너브라더스)는 탄식해야만 했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거나 ‘유쾌한 영화에 대한 관객의 니즈’가 잘 맞아떨어졌다고만 판단해선 안 된다.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해 틈새시장을 개척했으며, 슈퍼히어로 영화 수요층의 기호를 살펴 만들어낸 적절한 킬러 콘텐트로 영향력을 발휘한 작품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쉴새없이 개발되는 스마트 기기 마냥 자꾸만 스크린으로 데뷔하는 슈퍼히어로가 판 치는 요즘이다. ‘데드풀’은 넘쳐나는 슈퍼히어로들에 식상함을 느낀 관객들에 ‘새로운 재미’를 줬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신상 슈퍼히어로’. 에너지가 느껴지는 활기찬 캐릭터의 기운. ‘데드풀’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안티히어로의 매력 극대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의 데뷔라고 할 수 있는 코믹스 ‘어메이징 판타지’(1962)에 등장했던 대사로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스파이더맨’에 쓰이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루카 복음서나 볼테르 전집에서도 유사한 느낌의 구절을 찾을 수 있는데, 어쨌든 ‘스파이더맨’ 이후 이 대사는 슈퍼히어로 콘텐트 전체를 관통하는 연결고리이자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잡았다. 이 한 줄의 대사가 주는 중압감으로 인해 슈퍼히어로들은 고뇌하고 또 고뇌한다.

예를 들어보자. DC의 대표적인 캐릭터 슈퍼맨은 사랑하는 여자 로이스를 뒤로 하고, 심지어 로이스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안 뒤에도 그의 옆을 떠나 영웅의 삶을 택한다. 배트맨 역시 마찬가지다. 연인도, 자신의 삶도 포기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며 적과 맞선다. 희생하면서까지 지키고자하던 고담시티에서 악당으로 내몰리면서도 여전히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지켜보는 이들이 가혹하다 느껴질 정도로 참 힘들게 살아간다.

마블의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DC에 비해 좀 더 유쾌하고 트렌디한건 사실이지만 그들 역시 ‘큰 힘’이 안겨준 중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떠안고 헉헉거린다. 스파이더맨은 한창 데이트를 즐길 나이에도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비정규직 사진기자 일을 하며 영웅으로 살아가느라 힘든 시간을 보낸다. DC에서 가장 자유분방해 보이는 캐릭터 아이언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언맨은 억만장자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면서, 또 놀라운 두뇌의 천재이기도 하다. 껄렁껄렁한 건달의 면모까지 가지고 있어 ‘그저 속 편하게 살 것 같은 인물’로 느껴진다. 이런 성격의 아이언맨 마저도 갈수록 ‘큰 힘’에 대한 고민에 빠져든다. 심지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장황하게 이런저런 말을 늘어놨는데, 그만큼 ‘데드풀’이란 영화 속 캐릭터가 대다수 슈퍼히어로 캐릭터와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을 하기 위함이다. ‘데드풀’의 주인공 캐릭터 데드풀은 기존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들과 달리 안티히어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슈퍼히어로들이 ‘큰 힘’을 ‘제대로’ 사용해야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정의 운운하며 싸우고 있는 데 반해, 데드풀은 그저 복수를 위해서라든가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싸운 게 전부다. ‘정의’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하며 마구 횡포를 부린다.

바로 이 지점에서 관객은 통쾌함을 느낀다. 초능력이나 고강도 훈련, 또는 최첨단 기계의 힘으로 신체를 중무장하고 있으면서도 정신은 연약한 슈퍼히어로가 천지에 널려있다. 워낙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너도나도 이 땅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통에 관객도 그들의 행동패턴에 익숙해져버린 상태다. 이 흐름에 식상함을 느낄 무렵 마치 돌연변이처럼 튀어나온 안티히어로 ‘데드풀’은 온갖 욕설과 함께 날렵하게 몸을 날리며 지켜보는 이들의 속을 뻥 뚫어줬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떤 관객 앞에서도 ‘결국은 모범’으로 남아야 한다는 기존 슈퍼히어로들의 강박증을 싹 날려버린 작품이 바로 ‘데드풀’이다. 강력한 자기치유 능력에 각종 무술에 능하고 뛰어난 유머감각까지 가진 인물, 정의감 따위 없지만 그렇다고 나쁜 짓은 하지 않는 긍정적인 캐릭터. 역대 가장 매력적인 슈퍼히어로라 불렸던 ‘아이언맨’까지 자리를 비켜줘야 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으니 그에 열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기존 흥행 공식 뒤틀며 폭발적 흥행

‘데드풀’이 뒤틀어버린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의 성공 공식은 캐릭터 컨셉트 뿐만이 아니다. 적은 제작비로 CG를 최소화하고 대사량을 늘린데다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배우까지 기용했다. 게다가 캐릭터의 특징을 살리고자 R등급(청소년 관람불가)으로 개봉해야만 했다.

이 영화에는 총 5800만 달러의 제작비가 쓰였는데, 충무로의 기준으로 보면 천문학적인 액수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 예로, 마블에서 만든 ‘아이언맨’(2007)의 제작비가 1억 4000만 달러였다. ‘데드풀’을 비롯해 마블의 캐릭터 판권을 여럿 가지고 있는 20세기 폭스사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2014)를 만드는데 2억 5500만 달러를 썼다. 결과적으로 ‘데드풀’은 5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0배가 넘는 수익을 얻었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제작비 규모를 줄이면서도 관객에 어필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 탓에 ‘데드풀’의 액션 신은 타 슈퍼히어로 영화에 비해 눈요기 거리가 많지 않은 편이다. 이 부분이 단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데드풀’은 CG에 의존하지 않고 캐릭터가 몸으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실사 액션’으로 통쾌한 장면을 연출했다. 전성기 시절 성룡을 보는 듯 펄떡펄떡 뛰는 캐릭터의 몸놀림과 여기에 더해지는 ‘병맛 개그 코드’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다. 수백억원대 CG로 도배하지 않아도 슈퍼히어로 영화가 완성할 수 있다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젖혔으니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데드풀’의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가 라이언 레이놀즈라는 사실 역시 인상적이다. 라이언 레이놀즈는 ‘데드풀’이 마블 코믹스에서 인기 캐릭터로 떠오를 당시부터 열렬한 팬이었다고 밝히며 무려 11년에 걸쳐 이 작품의 영화화를 기다렸다. ‘데드풀’의 팬들 사이에서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높은 배우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라이언 레이놀즈는 DC코믹스 계열 슈퍼히어로 영화 ‘그린랜턴:반지의 선택’(2011)에 주연으로 출연했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특유의 유쾌한 이미지 때문에 대중 호감도가 높은 편이지만 주연으로 나서 성공한 횟수 만큼이나 실패한 적이 많은 배우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 캐릭터를 맡기기엔 모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무엇보다 상대 진영의 슈퍼히어로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섰다가 참패한 배우를 데려와 ‘에이스’로 쓴다는 게 쉽지 않았을 터. 결과적으로 ‘데드풀’과 라이언 레이놀즈는 이 까다로운 선입견을 깨트리는데 성공했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데드풀’이 되는 과정과 성공적인 결과 역시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안겨주기 충분했다.

영화 ‘데드풀’이 걸어온 길은 극중 캐릭터가 처한 상황만큼이나 험난했고, 또 유쾌했다. 극중 캐릭터는 암 치료를 위한 비밀치료에 참여했다가 흉측한 외모를 가지게 된다. 여자친구 앞에도 나서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한다. 이 과정은 마블코믹스에서 탄생을 알린 뒤 인기 캐릭터로 떠오르고도 11년 동안이나 영화화되지 못하고 떠돌았던 ‘데드풀’의 고생스러웠던 발자취와 묘하게 맞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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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7-02-24

조회수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