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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평상

신인감독상 | 허정 <숨바꼭질> : 정 재형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44.신인감독상 심사평하는 정재형 회원

 

신인감독상 | 허정 <숨바꼭질>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그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정 재형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불안의 깊은 우물에 세 명의 한국인이 빠져있고, 그들의 영혼이 하얗게 잠식당한다. 만만치 않은 한국사회의 헝클어진 지형도를 보기 좋게 정통 스릴러의 식탁 위에 잘 차려놓은, 젊지만 치기 어리지 않는 영화 <숨바꼭질>. 감독의 이름은 허정이다.

  영화의 서사는 히치콕의 그물 속에서 움직인다. 성공을 위해 형을 '모함'했던 주인공 동생의 불안의식은, 형이 계속 그를 지켜보고 따라다니며 언젠가 자신에게 복수할 거라는 강박 속에서 환각을 만들어낸다. 몸에 물을 흘리며 나타나고 천정에 올라갔다 떨어지며 동생의 목을 조르는 비루한 형의 몸체는 영화 <박쥐>나 <비유티풀>이 보여줬던 상상력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그건 맥거핀이다. 나중에서야 형의 실체를 쫒게 만드는 식의 속임수 연출법은, 허정이라는 '젊은 히치콕'의 시네마키드적 훔쳐보기 욕망을 또한 엿보게 한다. 그의 재능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포의 절정은, 알고 보니 범인은 옆집 여자였다는 설정을 맞이한다. <사이코>, <샤이닝>, <이웃사람>에서 익히 봐왔던 극단의 냉혹감이 이번엔 두세 배로 커져 관객 앞에 엄습한다. 미친 여자가 헬멧을 벗어제낄 때 관객의 경악은 <사이코>에서 노만 베이츠의 가발이 벗겨질 때보다, <샤이닝>의 잭 니콜슨이 아내와 자식을 향해 도끼를 휘두를 때보다도 놀랍다. 

  이 영화의 서사를 더욱 맛깔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서스펜스가 아니라, 주인공과 아내, 미친 여자 세 명이 각각 품고 있는 마음속의 '악령'들을 사회심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그림자들은 우리 사회가 분출시키고, 스스로 억압하여 자기 몸속에서 자라난 저주받은 집착과 열등감이다. 동생은 억울하게 '죽은' 형의 저주와, 아내는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의 원한과, 미친 여자는 부자들이나 사회권력층의 폭력과 맞서 싸운다. 그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올빼미처럼 잠을 자지 않는 외눈박이 소녀의 입을 빌어 감독은 이야기한다. 이 어둡고도 무서운 결말은 단순히 속편을 기대하는 흥행사의 솜씨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를 면도하기 위해 우연히 들었던 감독의 면도칼이 슬쩍 턱살을 베어내면서 한두 방울 '아픔'으로 떨어짐을, 또한 그 칼이 계층갈등의 쓰라린 추억이 베인 살 속을 에이고 지나감을, 문득 느꼈음직하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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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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