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희(영화평론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그 제목만큼이나 단정하면서도 푸근한 영화다. 또한 불교의 견성 과정을 환기시키는 독특한 로드무비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지닌 탄탄한 서사와 개성은 많은 부분 원작인 김도연의 동명소설에 빚지고 있기는 하지만, 언어 서사의 장황함과 의뭉스러움이 오히려 영화에서는 보다 담백해지고 경쾌해진 것은 임순례 감독의 특기가 발휘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를 짓는 노총각 선호(김영필)는 집안에서 구박 덩어리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뿐만 아니라 장가도 못 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기계 농사를 마다하고 소를 이용한 전통적인 방식의 농사를 고집하는 바람에 선호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급기야 소를 팔아버리기로 결심한 선호는 아버지 몰래 소를 싣고 우시장을 향한다. 그러나 선호는 왠지 차마 소를 팔지 못하고, 옛 애인 현수(공효진)의 전화를 받으면서 뜻하지 않게 소와 함께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선호와 소의 여정은 횡성 우시장에서 친구의 상가로 갔다가, ‘맙소사’라는 절에 들러, 강릉, 진주, 영광을 돌아 서울 조계사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피터, 폴, 앤 메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민규, 선호, 현수 세 친구의 아름다웠지만 아프기도 했던 대학시절이 회고된다. 거기에 그들이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이나 들렀던 장소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교직된다. ‘선호, 현수, 민규’ 의 관계는 현수를 가운데 둔 삼각관계의 양상이 두드러지자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삼각관계이기 이전에 ‘세 친구’였다는 점이다. 혼성의 세 친구는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사랑이 싹텄고 오히려 그 사랑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영화는 임순례 감독의 장편 데뷔작 <세 친구>(1996)의 성숙 버전이라고도 할 만하다. <세 친구>가 사회의 초입에 선 고교동창생들의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이미 한바탕의 실패를 맛보고 30대에 접어든 대학동창생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주로 동성 간의 우정을 다루었던 임순례 감독이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도 유심히 볼만한 대목이다. 설화에는 어리석은 아들이 집을 나가 세상을 배우고 보물과 색시까지 얻어 돌아온다는 유형이 있다. 언제 들어도 우리를 유쾌하게 만드는 유형이다. 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바로 그러한 유형에 속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소’가 이야기의 구심점으로 작용하면서 인물들의 시간과 동선이 불교적인 원환(圓環)을 그려낸다. 그 과정이 매우 자연스러워 탈속과 세속이 비빔밥처럼 어우러지며 우리를 편안하게 만든다. 그것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를 보여준 김영필과 공효진일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황소 ‘먹보’이다. 이 영화에서 먹보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