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다
- <귀향(鬼鄕)>
글. 정재형(동국대교수, 영화평론가)
영화 <귀향>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공허한 현대인의 마음을 채워주는 강한 주체의식 때문이라 본다. 소설가 토머스 울프의 작품 이름에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제목이 있다. 정신대에 끌려갔던 꽂 다운 조선 소녀들은 두고 온 고향에 다시 못 간다. 대신 그들은 더 큰 자각을 한다. 내가 태어난 고향엔 못 가지만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간다는. 마음의 고향이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에 네가 어디서 왔느냐는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 <귀향>은 역사와 인간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묻는다. 그래서 제목도 귀향(歸鄕)이 아니고 귀향(鬼鄕)이다. 영혼이 고향을 찿아간다는.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이 영화가 머금고 있는 근본 문제의식이다. 정신대에 끌려간 조선소녀들은 처참하게 찢기고 마침내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일제의 만행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관객들에게 거꾸로 피가 솟게 만든다. 이 영화는 일제의 폭압에 대해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억울하게 죽는다면 그 영혼이 차마 극락에 갈 수 있겠는가. 영화속에서 소녀들은 지옥에서 살고 죽었다. 이 영화는 그들을 애도하고 묵념한다. 분노를 삭히면서 우주의 근본 가르침을 찬찬히 짚어보게 한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영화는 한 위안부 할머니의 현재 모습에서부터 시작하여 과거를 넘나든다. 영화속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현재와 과거를 잇는 두 개의 장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어머니가 딸의 신변을 걱정하여 만들어준 괴불노리개이고 죽은 소녀들의 영혼처럼 등장하는 나비다. 이 둘은 영화의 은유적 기능을 해준다. 괴불노리개의 소유자는 현재의 위안부 할머니지만 그건 자신과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언니의 마지막 유품이다. 할머니는 자신을 위해 대신 죽은 것 같은 언니의 영혼을 추모한다.
나비는 산 자와 죽은 자 곁을 넘나들고 조선의 산천을 자유롭게 떠돈다. 나비는 자유를 상징한다. 이 영화에서 나비는 장자의 나비를 연상시킨다.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장자}에서는 장자와 나비가 분명 다른 존재라고 말한다. 그것을 물화(物化)라 했다. 물화는 경계가 있는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물화가 분명치 않은 세계는 깨달음의 세계다. 영화는 삶과 죽음 두 경계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 그렇게 죽음을 극복하고자 한다.
현재와 과거를 잇는 장치로 진도 씻김 굿이 등장한다. 할머니는 굿을 통해 과거를 만난다. 무속을 통해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다. 무속은 일제가 그토록 없애고자 했지만 없어지지 않은 우리 나라의 민간전통의식이다. 한국인이 조선소녀의 억울한 사연을 듣게 되는 것이 무속의 세계를 통해서라는 설정은 흥미롭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영화는 죽음 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설명한다. 어떻게 살다가 죽는가. 죽은 사람들을 등지고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등의 의미다. 우리 할머니들의 역사엔 현재 내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가 스며있다. 영화는 과거 선조들의 아픈 사연을 이야기하며 다시 그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염원으로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