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Crying Out) 월드 시네마,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 삼대(三代)의 치유를 향한 오디세이
정민아 (영화평론가) 트리플 버디 로드무비. 세 명의 남자들이 길을 떠난다. 그 세 명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삼대이다. 그들은 친구인가? 아직,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싫어하며, 너무나 고집스럽다. 그들은 모두 문제가 있다. 아들은 섹스홀릭, 아버지는 알코홀릭, 할아버지는 고집불통에 근육경련이 심각하다. 이런 이들이 왜 함께 길을 나섰을까? 인생이 밑바닥으로 치달을 때,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혈육인가보다.
제각각 사연이 있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지만 보내지 못한다. 그는 시신을 파내고 목욕시킨 후, 생기를 부여하기 위해 새빨간 원피스에 빨간 하이힐을 신긴다. 그는 죽은 아내를 차에 태우고 도주하는 중이다. 아직 그는 아내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생모의 불화로 어린 시절 상처입고, 새엄마의 장례식에는 참석도 하지 않은 아들은 낮에는 폐휴지 재생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지만 밤이면 밤마다 상대를 바꾸어 육욕을 채운다. 매일 아침 그의 곁에는 낯선 나신의 여자가 누워있다. 노인요양원에서 생활하는 할아버지에게는 찾아오는 이가 거의 없고, 노인들이 부르는 “인생은 아름다워” 노래에 질려버렸다. 젊은 날처럼 거친 하키경기를 보며 열광하고, 귀에 꽉 차게 큰 볼륨으로 컨트리 음악을 듣고 싶다. 그러나 남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공동생활에서 이마저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도주한 아버지를 데려오기 위해 생전 말도 섞지 않던 손자와 할아버지가 나섰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버르장머리 없는 돼지 대가리라 하고, 손자는 할아버지를 고집불통 대책 없는 노인네라고 한다. 아들의 생모는 매일 타로점을 쳐서 전남편의 여정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된다.
영화는 정적인 것과 폭발적인 것을 오간다. 죽은 아내와 함께 죽고 싶지만 아이들과 살고 싶기도 한 욕망, 거칠게 이 여자 저 여자를 떠돌지만 따뜻하게 사랑받고 싶은 욕망, 이 이중적 심리상태가 미장센으로 표현된다. 매우 멀리서 찍은 롱쇼트와 클로즈업이 극단적으로 대조되며 교차하고, 광활한 퀘백의 풍경을 시원하게 잡아내다가 카메라는 음습하고 축축한 꽉 막힌 실내를 돌아다닌다. 모텔, 클럽, 술집을 오가는 사람들은 광대하고 고요한 대자연 풍경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꼼꼼하게 인물들의 행동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다가 대뜸 유령들이 조용히 응시하거나 어린 자아가 울고 있는 초현실적 장면으로 전환되곤 한다.
영화는 그로테스크하고 유머러스하고 통렬하고 통쾌하다. 저마다 난폭한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젊은이나 노인이나 마음 속에는 사랑 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있다. 부모에게 자식은 영원히 아기이다. 아버지가 떠날 때에야 남자는 남자가 된다. 고통스럽더라도. 동일한 유전자를 간직한 이들의 교감은 세대간의 갈등을 충분히 뛰어넘는다. 결말은 우리의 부모가, 우리의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한 이들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죽은 뒤에나 알게 되는 뒤늦은 깨달음이 되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