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눈이 온다. 어쩌면 일기예보에서는 폭설을 예고했는지 모른다. 솜털처럼 흩날리는 눈송이에 아이들은 환호할 테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성인들에게 눈은 반갑기보다는 걱정거리다. 퇴근길 교통체증이 걱정되고 노인들의 실족이 염려되고 눈이 녹은 뒤의 질척한 거리가 짜증난다. 눈이 오는 것을 보고 즐겁지 않기 시작하면 어른이 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자조적인 농담이다. 눈송이의 흰색은 퇴색하기 쉽고, 그 순백의 아름다움에 부질없이 현혹다면 조롱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눈발이 날리는 빌딩숲을 훝는 카메라의 시선으로부터 시작하는 오프닝은 현실의 부조리와 처세에 찌든 관객들을 향해 날리는 초대장이자 선택을 강요하는 질문이다. 눈발 날리는 이 세계로 들어올 수 있겠느냐고. 그 위로 갈매기가 난다. 마치 커다란 눈송이 같다. 잿빛 하늘과 회색의 도심 상공을 비행한다. 부리에 한 장의 초대장을 물고 있을 것만 같다. 잊혀진 시간에서 날아온 전령사, 혹은 비일상적 공간으로의 여행을 인도하는 안내자처럼.
‘만화영화’라는 명칭이 애니메이션이 지닌 커다란 두 가지 미학적 특성을 가리키고 잇기는 하지만 어느정도는 폄하하는 의미를 담고 잇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다.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은 미성년과 성년이라는 이원적 틀 안에서 제작과 관람, 비평이 이루어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기에 흩히 허황된 이야기쯤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실사영화처럼 현실의 움직임을 그대로 포착하기보다는 그림이라는 인위적인 작업을 통과하고서야 간접적으로 현실의 역동성을 담아낼 수잇는 매체적 특성은 현실과의 접점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만화영화’가 현실과 맺는 관계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학습도구(<똘이장군>, 1978)로 이용되거나 (감독 자신의 말대로 일본 메카닉 물에서 상당 부분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를 강화시키는 수단(<태권브이>, 1976)으로 활용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마케팅 전략 아래 제작된 <블루시걸>(1994)는 이러한 구분을 의식하고 있었던 듯하지만 낮은 완성도와 ‘성인물은 곧 성애물’이라는 저급한 인식 수준으로 오히려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고착시킬 뿐이었다.
<원더풀데이즈>(2003)와 <마리이야기>(2002)는 이러한 반성의 토대 위에서 제작되었다. <원더풀데이즈>가 대자본을 끌어들여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했다면, <마리이야기>는 애니메이션의 환상성이 현실과 맞닿는 접촉면을 확장시키는데 집중했다.. 성년의 현실에서 유년의 과거로, 다시 비현실적 환상으로 이행했다가 현실로 귀환하는 내러티브는 애니메이션이 잘 표현할 수 있는 유년과 환상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으면서도 성인의 경험적 세계를 배제하지 않고 팍팍한 일상을 현실과 맞닿는 매개점으로 삼아 성인물과 아동물이라는 이분법을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마리이야기>는 현실을 향해 강하게 밀고나가지 않는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혼담, 할머니의 노환,(예고된 죽음) 친구 준호의 전학은 주인공 소년 나무의 우울을 강화하지만 이러한 유년의 상처와 우울감은 비현실적 존재인 마리와의 만남을 통해 치유된다. 파스텔 톤의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 서정적 이미지로 빚어지는 아름다운 영상에 비해 이야기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년의 성장담이다. 환상과 이어지는 성장담을 성인의 현실에서 바라볼 때, 그것은 순수성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라는 현실의 판타지로 치환된다. 유년의 기억이 순수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강조될 때 순수하지 못한 현실은 부정되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이야기속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의 유년으로, 다시 성인이 된 현재로 돌아오지만, 순수라는 이상화 된 세계로 넘어간 현실은 귀환하지 못한 채 환상으로 채색되어 유년의 세계로 남는다.
2D에 대한 집착 역시 이러한 면을 보여준다. 꼼꼼한 실사 촬영을 바탕으로 하여 3D 작업을 한 뒤 2D로 리터치하여 3D의 공간감을 살리면서도 2D의 질감을 살린 공정은, 차갑지만 공간감이 풍부한 3D의 특성과 평면적이지만 질감이 부드러운 2D의 장점을 살린 기술적 효율성에 눈길이 가기보다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소거해야 할 어떤 것,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한 매개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아동물과 성인물이라는 거친 이분법적 통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현실을 담아내고자 한 <마리이야기>는 안시에서의 수상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환상의 관계에 대해서 보여준 편향된 태도는 세기 전환의 시점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의 작업에서 이성강 감독은 많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마리이야기>가 지니고 잇는 문제의식은 이후 <돼지의 왕>(2011), <파닥파닥>(2012), <소중한 날의 꿈>(2011) 등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된다. <돼지의 왕>은 과거로 회귀하지만 유년의 순수에 대한 동경보다는 현실의 모순에 대한 강렬한 비판에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파닥파닥>은 어촌 마을의 역동적이지만 소박한 일상이 아니라 생존과 자유를 향한 잔혹한 우화를 들려주고 있으며, <소중한 날의 꿈>은 순수한 시절에 대한 동경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미학적,질문이라는 차원에서 <마리이야기>가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이대연
영화평론가. 소설가. 저서로 소설집 『이상한 나라의 뽀로로』(2017), 공저 『영화광의 탄생』(2016)이 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