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 오브 마인
모든 전쟁은 추악한 그림자를 남긴다. 승자에게나 패자에게나 예외란 없다. 사실 지난 인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얼마나 뼈저리게 전쟁의 고통을 경험해 왔는가. 하지만 그런 사정을 빤히 알면서도 우리는 또 전쟁을 일으키고 다시금 비극을 겪는다. 최근에 개봉한 <랜드 오브 마인>(Under sandet, 마틴 잔드블리엣 감독, 극영화/전쟁물, 독일/덴마크, 2015년, 100분)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실제로 있었음 직한, 아니 실제로 있었던 일을 다루고 있다. 아무리 전쟁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 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덴마크는 5년 동안의 독일 나치 점령 하에서 자유를 맞았다. 그런데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독일군이 덴마크 해안으로 연합군이 상륙할 것을 예상해 해안 가득 지뢰를 묻어놓았는데, 정작 연합군은 노르망디로 상륙했으니 지뢰밭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군의 지뢰가 저절로 사라질 리 만무하고.
급조된 덴마크 군의 상사인 칼(로랜드 물러)에게 주어진 임무는 서해안에 묻힌 지뢰를 제거하는 것이었고 이 작업을 수행할 인력으로 독일군 포로들이 배정된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들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스무 살이 안 된 소년병들이었고 개중에는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글자그대로의 소년도 있었다.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독일은 13세로 징병연령을 낮추었다고 한다) 전쟁의 막바지에 몰리면서 독일군이 징병연령을 낮춰 수많은 전사자들의 자리를 대체한 때문이었다.
영화는 소년병들이 열 지어 모래바닥을 기어가면서 맨손으로 지뢰를 찾는 작업이 주종을 이루고 그들 중 몇몇은 지뢰가 폭발해 어이없는 죽음을 맞는다. 논리적으로 볼 때 독일군이 쳐놓은 덫이니 독일군이 치워야 마땅하겠지만 소년병들의 입장에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전쟁은 이미 끝났는데 자신들은 여전히 사선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덴마크 군에서는 이들이 먹을 음식조차 제대로 공급해주지 않아 영양실조에 걸릴 지경이었다. 유일한 희망은 자신들에게 배정된 4만 5천개의 지뢰를 제거하면 집에 보내주겠다는 허망한 약속뿐이었다.
<랜드 오브 마인>은 물론 반전영화 범주에 들어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쟁이 갖는 후유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생각할 거리를 더욱 많이 만들어준다. 어이없는 상황도 충격적이고, 소년병들의 짓밟히는 인권도 눈길을 끌고, 주인공 칼 상사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칼 상사가 소년병들을 그저 독일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한 사람씩 나누어 대하게끔 된 것이다. 아무 죄 없는 소년들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냉정해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 덕분에 <랜드 오브 마인>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아 수상을 했다. 작품의 진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전쟁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헌신짝 취급당한다. 지뢰를 뿌려놓은 군인과 그 지뢰에 목숨을 빼앗기는 군인들 사이에 어떤 개연성도 찾아내기 힘든데 정작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들은 모두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며 비극을 합리화시킨다. 주제의식에서 다소 차이가 나지만 역시 지뢰 사고를 다루는 영화로 <킬로 투 브라보2014>가 있다. 이 영화 역시 평단의 주목을 받았기에 두 영화를 비교해 가면서 보면 전쟁의 참상을 보다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전 세계에는 1억 개 이상의 불발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전쟁 소문이 흉흉하게 떠돌고 있다. 혹 주전론자主戰論者들이 있다면 반드시 이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이유 불문하고 전쟁은 재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