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열쇠
1988년에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에 거주했던 유대인들 중 무려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갔고 거기서 비참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에 동조한 프랑스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 깊은 사과를 한 적이 있다. 독일에 협조한 비시 정부에서 저지른 일이었다. <사라의 열쇠>(지스 파겟 브레너 감독, 극영화, 프랑스, 2010년, 111분)는 그 당시에 어느 유대인 가족에게 벌어졌던 비극을 그린 영화이다. 실제로 영화중에 대통령의 연설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그 지점부터 사라의 이야기는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신문 기자인 줄리아(크리스틴 스콧 토마스)는 우연히 남편의 가족과 관련된 어두운 역사를 접한다. 파리에서 삼대 째 살았던 집에 얽힌 끔찍한 사연이다. 그 집은 원래 스트라진스키라는 유대인 가족이 살던 집이었는데 1942년 7월 어느 날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그들을 데려간다. 아홉 살 소녀 사라(멜루신 메이야스)는 부모와 끌려가기 직전에 기지를 발휘해 남동생을 벽장에 숨긴다. 그리곤 벽장문을 잠근 후 열쇠를 가져왔는데 혹 누군가 문을 열고 동생을 못 데려가게 하기 위해서였다. ‘누나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약속을 동생에게 남긴 채.
물론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동생은 벽장에서 굶어죽고 만다. 어렵사리 수용소를 탈출해 집으로 돌아온 사라는 동생의 주검을 발견했고 그날부터 혼이 달아나고 말았다. 사라는 맘 착한 농부 줄스(닐스 아르스트럽) 덕분에 새 인생을 시작했고, 성장하여 미국으로 건너갔고, 좋은 남자와 만나 결혼 생활을 하다 아들도 얻었지만 그녀에게서 한 번 달아난 혼은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는 금발에 이목구비 선명한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했지만, 사라에게 한 눈에 반했던 남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공허한 미인이었다.
이전에도 혼이 달아난 여인이 나온 영화를 몇 편 본 적이 있다. <조이 럭 클럽1993년>에서 어이없게 아기를 잃은 잉잉(프란스 뉴엔)은 종종 넋이 빠져 딸이 옆으로 다가가도 알아보지 못한다. <사랑이 지나간 자리1999년>에서 아들을 유괴당한 베스(미셀 파이퍼)는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큰아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소피의 선택1982년>에서는 단 한 번의 어이없는 선택으로 내내 고통 받던 소피(메릴 스트립)는 자살을 하고 만다. 이들은 모두 끔찍한 고통으로 혼이 달아난 여인들이었다.
<사라의 열쇠>는 원작소설이 있긴 하지만 영화 속에는 나름대로의 훌륭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주인공 줄리아는 과거의 단편적인 정보들을 하나하나 찾아나가, 드디어 모자이크 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정보를 모아 전체 이야기를 구성해내 마침내 사라의 비극을 읽어냈다. 오로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유대인을 희생시킨 한 독재자의 광기가 어떻게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생생하게 살아남아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지 말이다.
사라는 종종 바다를 찾는다. 17살 때까지 질곡의 삶을 사느라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라에게 바다는 안식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는 그녀를 가만 두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생명을 데려가고 말았다. 공허한 인생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사실 사라에겐 자살만이 최고의 해결책이었으니 영화를 보면서 따로 그녀를 비난할 용기도 생기지 않았다. 필자 역시 감독이 이끌어낸 결론에 그만 동감하고 만 것이다.
<사라의 열쇠>는 2010년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여세를 몰아 앞으로 다른 영화제의 상들도 받아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