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스피치
공포의 연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영국에선 특히 공식 석상에서 한 말씀을 부탁받는 경우가 시시 때때로 생긴다고 한다. 그에 따라 ‘한 말씀’에 붙여진 명칭도 다양해 선거연설(a campaign speech), 추모연설(a memorial address), 취임연설(an inaugural speech), 환영연설(a welcome speech), 그리고 마이크만 잡았다 하면 놓지 않는 다변가를 위한 5분 연설(a five-minute speech)까지 정해졌을 정도다. 그 중에 식사 시간에 부탁하는 이른바 식탁연설(a table speech)이라는 것이 있다.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잘 먹었으니 소화도 시킬 겸 솔깃한 이야기 한 자락 해보라는 취지에서 나온 연설일 게다.
영국의 풍자작가 G.K. 체스터튼(1874-1936)은 유난히 식탁연설을 부담스러워 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인가도 오찬午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체스터튼에게 한 말씀을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일어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로 시대에 그리스도인 순교자가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맹수 우리의 문이 열리면서 굶주린 사자 한 마리가 쏜살처럼 튀어나왔어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순교자의 목숨은 가망이 없었지요. 사자가 그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때 사나이는 냅다 사자의 귀를 잡더니 한 두 마디 속삭였습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미친 듯 날뛰던 사자가 기겁해서 자기가 나왔던 입구로 부리나케 도망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상황이 궁금해진 네로 황제는 그 사나이를 불러 사자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사나이는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한 말입니다. 저는 사자에게 다만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식후에 테이블 스피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자는 도망쳤습니다.’”
말더듬이 왕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팀 후퍼 감독, 코미디/역사물, 영국/호주, 2010년, 118분)라는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체스터튼의 재치 만점 테이블 스피치였다. 굶주린 사자마저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한 말씀!
이어서 떠오른 생각은 영국의 왕실 전통에 관한 것이었다. 예로부터 영국의 왕실 교육은 스파르타식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왕자나 공주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고 한다. 이를테면 장작더미에서 나무를 한 개씩 빼어 옮겨다 쌓고, 다 쌓였다 싶으면 이번에는 다시 그 장작더미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물론 주변 하인들 중 누구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잔 침대를 정리하는 일도 왕손의 몫이었는데, 기상과 동시에 술이 길게 달린 터키 산 담요 여러 장과 오리털 베개를 가지런하게 펴서 놓는다. 여기에서 만일 정확한 마무리가 안 돼 침대 모양이 망가지면 잘 될 때까지 반복한다. 아마 인내심을 키우려고 고안해낸 교육 방법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공주는 승마선수가 되는 등 강인한 체력을 기르고, 왕자는 으레 해군에 입대해 장교에 임명된다. 군 목부를 마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육해공 삼군 중에 가장 모진 훈련을 받는 데가 바로 해군이다.
왜 왕실에선 그렇게 엄한 교육을 했을까? 나쁜 피와 섞이는 게 두려워 유럽 왕실에선 오랫동안 근친혼을 해왔다. 와중에 열성유전자가 득세했고 그 폐단에서 탈피하고자 일부러 혹독한 교육을 시킨 것일까? 영화 중간에 버티(후의 조지 6세)가 간질에 걸린 남동생이 13살에 죽은 이야기를 하면서 유전병은 아니었다고 주장한 것이 실은 왕가 후손들의 신체적. 정신적 약점을 인정한 게 아닐까? 말더듬이에 왼손잡이에 안짱다리였던 버티도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암시가 없지만) 가계 유전병의 희생자였을지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의 선조인 조지 3세의 기행을 다룬 영화 <조지왕의 광기>(1994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왕의 연설
<킹스 스피치>는 조지 6세(1936-52년 재위)가 즉위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다룬다. 왕자인 버티에겐 개인적으로 큰 골칫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말을 더듬는 것이었다. 특히, 긴장을 하거나 수세에 몰리면 더더욱 말더듬 현상이 심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게 형이 왕위 승계 1순위였으니 자신이 왕이 되지 않는 한 버티에게 대중 연설이란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 어디 제 맘대로 되던가? 형 에드워드 8세(가이 피어스)가 평민이자 이혼녀인 심프슨 부인과 결혼하느라 왕위에서 물러나는 바람에 버티는 졸지에 영국 왕이 되고 만다.
<킹스 스피치>의 시선은 우선 말더듬이 왕이 필사의 노력을 통해 훌륭한 연설을 해내고야 만다는 인간 승리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영국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관객이라면 이면에 숨은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맥락에 눈을 떠졌을 것이다.
에드워드 8세는 히틀러를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주는 방패역할까지 히틀러에게 기대했다. 사실 1939년에 폴란드를 전격 침공했던 나치는 폴란드가 옛 독일 영토라 그리 했을 뿐, 더 이상의 침략 전쟁이 없을 것이라 공언했다. 하지만 얼마 후 나치 군대는 프랑스 국경을 넘어서고 말았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볼드윈 내각은 사퇴했고 쳄벌레인 내각을 거쳐 드디어 처칠이 내각 수반으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조지 6세는 왕실의 수호자이자 대영 제국의 수장으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왕이라는 자가 겨우 소심한 말더듬이였으니.......
영화에서는 수시로 왕실의 권위와 서민의 일상이 부딪힌다. 버티(콜린 퍼스)는 지고한 왕족인 반면 라이오넬(제프리 러쉬)은 박사는커녕 자격증도 없는 언어치료자이자 실패한 연극배우이다. 심지어 영연방 국가인 호주 출신이기까지 하다. 말더듬 치료를 위해 만난 두 사람 사이엔 평등과 신뢰의 관계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었고 그 위태롭던 관계는 조지 6세의 연설에서 완벽한 자리를 찾는다.
두 사람을 둘러싼 여건도 아슬아슬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가들과 켄터베리 대주교는 쉼 없이 왕가를 흔들어대고, 형 에드워드는 천성이 자유주의자라 제멋대로 왕위를 버렸고, 유럽의 정치적 상황은 날로 어려워져 급기야 나치 독일에 선전포고 연설까지 하게 된다. 또한 버티처럼 거창하진 않았지만 라이오넬의 상황도 녹녹치 않았다. 연극 오디션에서 퇴짜 맞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부인 앞에서 맥을 못 추고 아들 중 하나는 말더듬이였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 모든 악조건들 역시 조지 6세의 연설로 돌파구를 찾는다. 연설이 갖는 힘이 그렇게 증명된 것이다.
여왕의 연설
왕의 연설이 나오는 또 하나의 영화로 <더 퀸>(스티븐 프리어스 감독, 극영화, 영국/프랑스/이탈리아, 2006년, 97분)을 꼽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조지 6세의 맏딸인 엘리자베스 2세의 연설이니 ‘퀸스 스피치’라 해야 옳을 것이다.
1997년 8월 31일, 다이아나가 프랑스 센 강변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아랍인 부호가 동승했고 파파라치와 추격전을 벌이다 지하도 벽에 차가 부딪치면서 사망한 것이었다. 전후맥락을 보건데 영국 왕실에 이만저만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장차 영국 왕이 될 소년의 어머니가 죽는 순간까지 추잡한 꼴을 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오히려 다이아나를 동정하고 나섰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순박한 처녀를 데려다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왕실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에서이다. 게다가 찰스 왕세자까지 죽은 다이아나의 편을 들고 나섰다. 심지어 언론에선 왕실의 존재 필요성까지 시비를 걸고 나섰으니 여왕이 이만저만 곤란한 처지에 빠진 게 아니었다.
영화의 중심에는 다이아나의 장례가 치러지기까지 한주일 동안 여왕이 겪었을 법한 고통이 서 있다. 결혼 초부터 며느리는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며 왕실의 체면을 실추시켰다. 이혼 후에도 조신하게 지내기는커녕 온갖 스캔들을 만들고 다녔다. 그런데 왜 여왕이 그녀의 주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천년을 이어온 왕실의 권위와 체통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행정부와 언론의 압력에 굴복을 해야 하나, 아니면 의연하게 자존심을 지켜야 하나? 여왕에게 심각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여왕에게 충고를 한다. 마더 엘리자베스(여왕 어머니의 애칭)는 왕실의 체통을 지키라고, 남편인 필립 공은 그런 천박한 여자의 죽음 따위는 무시해 버리라고, 아들인 찰스는 손자들의 어머니를 존중해 달라고, 새로 행정부의 수반이 된 블레어 총리는 당장 분노한 국민들을 진정시켜 달라는 부탁을 한다. <킹스 스피치>에는 젊은 시절의 마더 엘리자베스(헬레나 본햄 카터)가 나오는데 예나 이제나 왕족으로서 넘치는 품위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여성이었다.
여왕은 TV 카메라 앞에서 전 국민에게 다이아나의 추모연설을 한다. 긴장을 풀려고 일부러 밀실에서 라디오 마이크 앞에 섰던 선왕先王 조지 6세와는 퍽 다른 분위기다. “이제부터 할머니로서 그리고 여왕으로서 하는 말은 모두 진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왕은 국민의 지배자가 아니라 충복에 불과하기에 왕실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설에 나선 것이었다.
왕의 권위
<더 퀸>에서 여왕을 상징하는 동물은 거창한 뿔을 가진 수사슴이다. 무려 14개나 되는 가지를 갖고 있는데 실상 수사슴의 뿔이란 위엄만 있을 뿐 재빠르게 움직이는 데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다. 런던에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린 날, 여왕은 그 수사슴이 사냥꾼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시체를 보러 간다. 그 곳에서 발견한 잘려진 사슴의 목이라니! 런던으로 돌아온 여왕은 곧바로 버킹엄 궁으로 가서 성문 앞에 놓인 수많은 꽃다발을 목격했고 엄청난 추도인파와 인사를 나누었으며 추모연설을 한 뒤에 다이아나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왕실을 비난하는 다이아나 오빠의 추도사를 묵묵히 들어야만 했다. <킹스 스피치>에서 여왕의 할아버지 조지 5세(마이클 겜본)가 예견했던 바대로, 영국 왕실은 이미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신세였다.
<킹스 스피치>에서 즉위식을 치른 조지 6세가 가족과 함께 히틀러의 대중 연설을 담은 기록 필름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총통으로서, 하나의 과제와, 하나의 의무와, 하나의 진실을 갖고 있으며.....” 잘 알다시피 히틀러는 최고의 선동가였다. 그의 혀 세치에 유럽이 말려들어 온 대륙이 광기의 도가니로 빨려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 때 훗날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52년부터 재위)이 된 소녀 엘리자베스가 아버지에게 ‘저 사람이 무어라고 하는지’ 물어본다. 조지 6세는 답한다. “글쎄다. 하지만 말을 무척 잘하는구나!”
보기에 따라서는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왕이라는 자가 고작 말더듬이에 불과했으니 ‘-눈에 -만 보인다.’는 우리 속담과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 6세의 표정은 입과 달랐다. 대영 제국의 통치자로서 자신이 앞으로 싸워야 할 상대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조지 6세는 나치의 런던 공습 기간 동안 수도를 떠나지 않아 국민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왕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주연을 맡았던 콜린 퍼스는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내 연기 경력이 클라이맥스에 오른 게 느껴진다. 춤추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과연 그의 연기는 출중했다. 비단 남우주연상 뿐 아니라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등 알짜배기 상을 다 수상했으니 <킹스 스피치>의 팀 후퍼 감독과 제작진 모두가 춤추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더 퀸>에서 엘리자베스 여왕 역할을 한 헬렌 미렌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여왕도 이 영화를 보기 원한다.”고 겸손하게 수상소감을 밝혔던 점이다. 아직 살아있는 여왕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을까?
상 받을만합니다.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는 조지 6세. 그는 커튼이 쳐진 밀실에 들어가 오직 라이오넬만 앞에 둔 채 연설을 시작한다. 영국 국민을 상대로 개전을 선언하는 연설이었다. 그 때 울려 퍼지는 배경음악은 베토벤의 교향곡 7번 2악장 알레그로. 장엄한 서주부와 함께 왕은 첫 마디를 뗀다. “지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차대한 이 암흑의 시간에 나는 국내와 국외에 거주하는 국민 모두에게 이 메시지를 보냅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이제 온 나라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어야 하는 만큼 충분한 설득력을 제공해야 한다. 베토벤의 장중한 교향곡은 연설의 분위기를 살려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로 만들 때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한 편으로 정확한 고증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실을 오도誤導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말아야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사건에 대한 적절한 해석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만 전하면 되는 일반 신문보도와 역사물 영화가 또렷이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특히,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이 아직 살아있다면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킹스 스피치>는 다이나아 왕세자비의 죽음을 다룬 <더 퀸> 못지않게 민감한 영화라 하겠다.
영화가 왕실 이야기를 다루다보니 전체 분위기는 매우 점잖은 편이다. 그러나 국왕 역시 갈등을 겪는 인간으로, 우리처럼 내면의 아픔을 갖고 있다. 과연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버지와 관련된 영화를 볼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가 그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아버지의 추억을 다시 살려낼 것임은 분명하다.
최근에 한 언론사의 영화 기사에서 아카데미상을 폄하하는 내용을 읽은 바 있다. <킹스 스피치>는 유난히 영국 왕실 이야기에 약한 면모를 보였던 아카데미의 열등감에 힘입어 중요한 상들을 휩쓸었을 뿐이지 영화 자체로 보면 주제 의식이 평범하다 것이었다.
필자의 견해는 그와 다르다. 칸 영화제는 예술성에 중점을 두어 신선한 시도를 한 작품을 선호하고, 베를린 영화제는 고발성에 중점을 두어 체제 비판적인 작품을 선호한다. 아카데미는 비록 상업성에 의존하지만 그 중요한 맥은 인물의 발견에 있다. 조지 6세는 대단히 어려운 조건에서 대단히 훌륭한 일을 해냈으며, 그의 용기와 투지는 기억해 두어 마땅하다. 더불어 그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본주의 정신을 구현해낸 인물이기도 하다. <킹스 스피치>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굳건하게 악의 세력과 대적했던 위인偉人이 어떻게 그 첫 발걸음을 뗄 수 있었는지 수려한 영상언어로 담아냈다. 왕의 모습은 그래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권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준 훌륭한 작품이었다. <킹스 스피치>는 올해의 상을 거머쥘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