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사회 문화적 구심점은 미국이나, 같은 아메리카 대륙에 속해있는 중남미 문화가 돌올하게 드러내는 특이성들이 있다. 이들은 미국식의 패권주의와 자본, 매끈하게 조성된 산업과 문화에 얼룩을 남기고 때때로 그들을 미로에 갇히게 한다. 최근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멕시코 출신 감독 3인방의 작품들에서도 그들의 생래적 문화의 자양분이 드리우는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알폰소 쿠아론이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에게 그것은 인물들의 원천으로 기능하기도 하고 문화적인 표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때때로 이들의 영화에서 보이는 과시적인 롱테이크는 현대의 대세로 자임하지만 사실은 빈약한 역사적 서사를 가진 미국이라는 나라의 현재와 과거 사이를 끊임없이 진동시키기 위한 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역시 미국식 완강함이 만들어 놓은 서사적 혹은 장르적 전형성에 자신이 지닌 문화적 토양의 특징들을 불쑥불쑥 침범시킨다는 점에서 두 감독들과 공명한다. 다만 그의 경우, 좀 더 하위문화에 가까운 개인적 취향들이 영화에 ‘환상성’이라는 인장으로 드러나며 실제의 역사적 사건들과 부딪혀 서사적으로 무겁고 복합적인 층을 구성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계보를 이을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은 자신의 전작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가 가진 잔혹한 ‘동화’(fairy tale)적 특성과 <헬보이>시리즈, <퍼시픽 림>에서도 등장했던 괴생물체에 대한 만화적 상상력을 기본으로, <크림슨 피크>에서 보여준 고딕풍 스릴러의 긴장감을 적절히 취한다. 그러면서도 스토리텔링은 비교적 익숙한 선악의 대립 구도로 단순화시키고 있다.
1960년대 초의 미국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은 이 영화의 시각적 이미지들과 인물들의 사고 체계에 매우 강력한 기제로 작용한다. 그 당시의 특징을 잘 포착해낸 공간이나 소품들의 사용, 화면의 색감들은 단순히 복고적인 이채로움으로만 영화에 기능적으로 배치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냉전이라는 정세, 미국이 가진 소련과의 대결의식, 중산층의 성장과 소비문화의 발전, 민권운동이 시작되던 당대의 담론들의 핵심을 관통하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이웃집에 사는 일러스트레이터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분)와 같이 일하는 동료 젤다(옥타비오 스펜서 분)는 그녀가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어느 날 실험실에 특이한 괴생물체(더그 존스 분)가 실험대상으로 잡혀들어 온다. 엘라이자는 그에게 호기심을 느껴 주위를 맴돌고 그와 교감하며 점점 가까워진다. 한편 전직 군인이자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성격을 지닌 실험실의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새넌 분)는 괴생물체를 해부하려 한다. 연구 담당자인자 소련의 첩자인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 분)는 이에 반대하고, 엘라이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그를 구해내려고 한다.
이 영화가 가진 환상적인 분위기와 특징들은 상당부분 ‘괴생명체’라는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종종 ‘creature(생명체)’로 명명되고 때로는 좀 더 부정적인 함의의 ‘freak(괴물)’로도 불리운다. 아마존에서 잡힌 그는 물속에 살며 온 몸이 비늘로 덮어져있다는 점에서 어류와 비슷하고, 눈의 모양이나 물갈퀴 그리고 육지에서의 짧은 호흡이 가능한 점 등에서는 양서류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한다. 푸른색으로 발광(發光)하는 피부나 치유의 능력들은 그가 아마존 부족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다는 점을 수긍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일라이자와 그의 교감 과정이 둘 사이에 차단된 막의 존재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거대한 고철 덩어리처럼 보이는 수조에 담겨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일라이자는 투명하게 속이 들여다보이는 부분에 손을 댄다. 그리고 포악하여 접근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세워진 수조의 막 너머에 있을 그를 향해 손을 대고 바라본다. 이는 이 영화에서 자주 반복되는 일라이자의 특이한 행동 양식이다. 그녀는 퇴근 무렵 황혼의 따뜻한 빛이 들어오는 버스에서 모자를 벗어 유리창에 얼굴을 대거나 비가 내리는 유리창의 물방울들을 손으로 헤아려 보다 얼굴을 댄다. 이는 그녀를 현실의 비루함 너머, 실재계의 장막(screen) 뒤편을 감지할 수 있는 존재로 위치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만이 물 속에서 사는 기괴한 생명체가 가진 이종성 그리고 물이라는 장벽을 넘어서는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당대 미국적 사고 체계의 한계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내는 위한 것임이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태도는 스트릭랜드와 자일스의 대비되는 대사들로 표현되기도 한다. 스트릭랜드가 고전압 충격봉을 휘두르며 “저게 신의 형상으로 보이진 않잖아? 신은 나처럼 생겼지.”라고 말하면서 백인 주류 사회를 대표하는 남성으로서의 태도를 드러낸다면, 일라이자의 친구인 자일스는 “우리가 뭔데? 우린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말한다. 물론 이는 같은 백인 남성이어도 동성애자라는 측면에서 하위 위계로 위치할 수밖에 없는 자일스가 자기비하적 태도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인종, 성별, 장애유무, 성적 지향성, 계급, 종교적 차이라는 위계들은 인물들의 캐릭터를 부여하는 중요한 구성요소로, 같음과 다름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구별짓기들이 문제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일라이자의 독특함은 그녀가 장애인이자 여성이며 하층계급으로서 주류에서 벗어나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는다는 점,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긋 거리고 소릴 못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예요?”라는 물음을 통해 생물학적 종차라는 매우 어려운 난관마저 돌파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 있다. 이는 비교적 온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호프스테틀러 박사조차 그를 살려야 할 이유로, “이 생물은 지능이 있고, 언어 능력이 있고, 감정을 이해해요. 죽여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지점과 대비된다. 요컨대 지능과 언어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고등생물임을 박사가 강조한다면, 일라이자는 자기 자신과 그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윤리감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간 나왔던 ‘freak’한 존재와 인간의 교감을 보여준 다른 영화들-<미녀와 야수>, <킹콩>등-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주인공과 이종생명체와의 교감을 심정적인 공감이나 플라토닉한 사랑의 차원에서 적당히 봉합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는 이 영화의 관객들에게 매우 어려운 도전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며 대중적이지 않은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화(fairy tale)속에서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는 끝내 자신이 생명의 은인임을 숨기며 왕자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물거품이 되기를 선택한다. 그러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기괴한 존재가 인간과의 사랑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며, 그것이 가진 성적인 환타지의 불편한 관음증을 외면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영화적 환상을 이뤄낸다.
영화는 관객 대중의 강렬한 심정적 참여를 요구하면서 또한 관객에게 강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파스칼 보니체르가 지적했듯이, 영화관객들은 관음증과 물신숭배주의가 불러일으키는 에로티즘과 바라보기를 강요당하는 공포심 사이에서 포로의 신세이다. p.64.(장 루이 뢰트라,『영화의 환상성』,동문선)
그러므로 이 영화는 하위 주체들 간의 연대 강조, ‘인간human being’과 ‘괴물freak’의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만이 전부가 아니며, 불안한 긴장감에 허세를 부리던 냉전 시기 미국을 통해 현재의 우리 세계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환상성으로 극대화 된 영화적 프레이밍을 통해 잡을 수 없는 환영(illusion), 형체(shape)로서 보이지 않는 내면을 상기한다. 그리고 실체 없는 사랑의 메아리들만이 가득한 지금, 바우만식의 유동적인 사랑(Liquid love)들이 도전할 만한 현대의 설화로서의 의미를 부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일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그 반짝임과 사라짐의 순간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언제나 불안정한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가진 환상과 불안에 관해 이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이수향: 영화평론가. 201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 웹진 문화다 편집 동인. 공저로 『영화광의 탄생』(2016), 『1990년대 문화 키워드 20』(2017).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