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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영화평

설국열차- 7년간의 시나리오 작업의 공이 보였다.

저의 블로그에서 발췌했습니다.

 

<영화의 시작 그리고 그 의미>

이 영화는 기차를 배경으로 한 사회의 축소판과 인류의 진화에 대해 인간 본연의 아이러니한 모습에 대한 회의과 비판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그는 이야기 한다. 지구 온난화가 찾아왔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CW-7을 살포하게되어 빙하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을.....참으로 아이러니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 모든 시작과 끝의 원인에는 인간이였다는 것이 말이다. 지구 온난화가 대두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화석 에너지의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다. 그리고 빙하기가 시작된 원인 역시 온난화를 억제시키기 위한 개발책에 의해서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 그리고 지구의 멸망 위기의식으로 개발된 무기로 인한 빙하기 이 모든 주체는 안간이니 말이다....혁명이란 진화란 말과 일맥상통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희생을 동반한다. 그래서 인류역사의 혁명은 때론 독이되서 돌아오기도 한다. 그것이 지구란 공간에서 기후의 변화로 증명하였으며, 영화 말미 기차란 공간에서 일치시켜 볼 수 있다. 즉 커티스의 혁명이 오히려 기차란 공간에서 안정된 삶을 만든 것이 아닌 공간의 파괴로 이끌었다는 점에서다. 생존하기 위해 시작된 반란이 모두의 죽음을 이끌어간 것이다. 평등하고 향상된 삶을 위해 선동하지만 결국은 인간의 탐욕일 뿐이다라는 회의를 느끼게 한다.    

 

 

<기차란 공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 조직>

기차는 인간의 내면과 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우리 인류와 역사를 대변하는 작은 공간이다. 마치 달리는 기차처럼 인간이란 진화의 욕망을 가졌다. 즉 더 나은 삶에 대한 쾌락 추구 본능을 갖는 질주하는 인간의 모습과도 같다. 달리는 열차가 마치 당장은 앞으로만 달려가는 것 같지만 정해진 노선내에서 순환하듯 우리 역사는 앞으로 향해 나아가는 것 같지만 하나의 순환구조를 보이는 것도 기차란 시공간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알 수 있지만, 기차란 공간내에 당장의 앞만 생각하고 일어난 여러번의 반란이 있었다는 것은 반복된 역사에서 보여준다. 아마 커티스가 엔진에서 나온 눈물은, 그 깨달음이였을 것이다. 앞을 향해 달려왔지만 그 끝에는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는 미래가 아닌 역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 말이다. 다시 말해 큰 희생을 치루고 고통을 겪었지만, 자신이 그 엔진을 차지하면 다시 희생과 고통을 주어야하는 역할만 있다는 것을 말이다. 조직이란 역할을 맡은 구성원만 있을 뿐 리더가 된다해도 그 역시 조직(엔진)이란 형태가 유지되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부품이나 다름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것을 일찍이 감지한 것은 아마 메이슨일 것이다. 그녀는 절대 월포드가 뒷칸으로 자기를 찾으러 오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 기차가 움직이기 위한 하나의 부품으로 월포드가 생각한다는 것을 이미 감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성무선악설?>

인간은 극닥전 상황 및 공간에서 인간의 본성을 보인다. 이것의 대표적인 영화가 얼라이브라 하겠다. 굶주림과 추위속 생존에 있어서 인간이 어떻게 점차 변하는지를 보여준 영화다. 열차 속 꼬리칸은 대표적인 환경 변화에 따른 인간의 본성이 제시된 공간임을 영화 말미에 커티스의 회상하는 대화에서 말해준다. 꼬리칸에서의 참혹한 과거는 분명 극단적 현실에서 본능을 잃고 짐승처럼 되어버린 인간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마치 예수같은 존재로 길리엄이 자신의 팔을 희생하여 한 생명을 구하는 모습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듣고 그들은 이성을 찾았다. 여기서 인간의 본성은 환경에 의해 지배되는 성무선악설에 근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똑같은 환경에서도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은 틀려질 수 있다. 이러한 요인 때문에 초반 영화를 볼 때 커티스가 자신의 팔을 수치스럽게 여긴 것은 다름 아닌 끝까지 희생하지 못했던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성무선악설의 가장 잘 표현된 캐릭터는 아마 등장 자체는 신비주의로 무장되었지만 월포드가 아닌가 싶다. 그는 기차 안 공간에서 철저한 규칙을 정해놓고 통제를 한 인물이다. 그것이 비인간적인것이 아닌 인간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월포드가 의도적인 인구수 조절이 그것이다. 월포드는 길리엄과 친구라고 말했고, 월포드는 길리엄의 더이상 희생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꼬리칸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탄알에 지령을 넣어 일부러 반란을 일으켜 인구수 조절을 한 것은 아닐까? 그로 인해 꼬리칸 사람들은 단결이 되고 꼬리칸 사람만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이 아닌 보다 앞칸의 사람들도 희생자가 발생하고 기차 내 전체 인구수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 공급칸에 앞서 잔혹한 싸움에서 메이슨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이제 74%(?)을 죽을 거라고....그리고 길리엄도 그 싸움 직후 멈추면 안되겠냐고 커티스를 잡아본다....메이슨과 길리엄이 원하는 희생자는 딱 월포드의 의도처럼 74%까지만였던 것이다. ...만일 성악설에 근거하여 그가 인구수를 통제했다면 나의 단순 상상력에 근거하면 단백질 블럭의 일부에 독약을 탈 수도 있는 것이고, 피임약을 넣어 인구수 통제를 하거나 혹은 열차 한칸을 그냥 떼어버리면 그 뿐 아니던가???

 

<봉감독이 좋아하는 모성.부성을 바탕으로 한 밝은 미래 제시>

위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이와는 별개로 봉감독은 한국적 정서인 모성과 부성도 이 영화에 부여한다. 전작 괴물에서 부성애였다면 마더에서는 모성애를 모태로 하지 않았던가?! 이 영화에서는 인류의 시작이 모계사회였듯이 앞으로 미래도 모계사회가 될 것을 희망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인물로 요나란 여자 캐릭터와 나는 너무 늙어서 리더가 될 수 없다던 길리엄과 후계자를 찾고 있는 월포드 즉 미래를 더이상 바꿀 수 없는 인물이 아닌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어린아이 티미란 남자아이가 생존을 끝으로 하여 희망적 결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들 인물의 중심에 선 두 사람이 바로 부성애를 가진 남궁민수와 모성애를 지닌 타냐이다. 여자의 몸으로 자신의 아이를 찾기위해 반란의 싸움에 동참하고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아이를 부탁하는 타냐, 그리고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듯 하나 늘 함께하고 기차 속 공간이 아닌 더 큰 세상을 딸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심한 듯 바깥 세상을 지켜본 남궁민수가 그러하다. 남궁민수는 나름 엘리트에 속하며 그렇기에 커티스와는 다른 세상 즉 권력자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란 단순한 생각이 아닌 제3의 살 수 있는 세계를 지향한다.

참고로 내가 영화의 결말이 밝다고 생각하는건 모두가 느끼는 것이겠지만 모든 생명체가 죽었다고 생각한 바깥 세상에 북극곰이 생존하여 움직이는 것을 바탕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자연세계는 철저히 먹이사슬의 구조로 유지된다. 북극곰이 살아있다는 것은 단순 북극곰만이 아닌 그에 따른 먹이사슬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과 불>

꼬리칸에서 앞칸으로의 질주는 이미 많은 곳에서 언급됐ㅈ만 하층민들의 반란이고 이는 다시 말해 권력을 뒤바꿔보겠다는 의미다. 이런 구도 속에 가장 큰 중요 원소(?)의 역할은 물과 불이다. 물은 생존과 관련되어 있고, 불은 진화와 관련되어 있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를 구분 짓는 요인과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데, 수협생활을 하던 구석기 시대, 그리고 불의 발견과 함께 좀 더 진화된 정착생활을 하게되는 신석기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꼬리칸 사람들이 진격할 수 있도록 가장 큰 공을 세운 즉 반란의 성공을 도운 것은 불이였다. 그리고 이와 함께 중요시되는 생존에 근간이 되는 물을 차지하는 것이 곧 권력을 얻는 것이라 생각한 커티스 일행은 물 공급칸을 차지하려 한다. 물과 권력은 여기서 곧 동일시 되는데 즉 희소성이 있으나 수요는 많고 그것을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권력이 된다. 즉 물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다뤄지지만 흔히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즉 공기, 시간처럼 이것들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자이며 이 열차 안에서는 물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기에 달리는 기차의 핵심역할인 엔진을 차지하려 하지만 그것은 물 공급칸이 실상은 앞칸에 있다는 것을 알고난 이후다. (커티스가 물공급칸을 차지한 줄 알고 월포드가 그곳까지 올 줄 알지만 메이슨은 물공급칸은 엔진을 통해 들어온다고 말해주는 장면)

 

<기차 열칸으로 보는 장면속 의미>

열차칸에 대한 기억은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헷갈리긴 한데 그 점을 감안하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기차 열칸이 하나하나 나눠진 듯 이어져 있듯이 한 구간에서 벌어진 장면 속에 일부분은 때로 다음 열칸을 예고한다.

 

단백질 블럭을 만드는 주방칸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난 차마 눈뜨고 그 장면을 보진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 싫은게 바퀴벌레니 말이다....꼬리칸에서 크로놀을 단백질블럭과 교환할 때, 몇몇 보이는 바퀴벌레를 보면서 빙하기를 거쳐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명체가 바퀴벌레라는 예전 기사와 얼마전 본 바퀴벌레의 적응력으로 인해 어느 곳에 있는 바퀴벌레냐에 따라 새로운 맞춤 바퀴벌레 약을 개발해야 한다는 기사가 같이 떠오르는 순간이였다...저런 곳에서까지 바퀴벌레가 있구나란....음식이 있는 곳엔 무조건 바퀴벌레는 생기는구나란 생각과 함께 말이다....그러나 그때까진 바퀴벌레 약이 없는데 바퀴벌레 번식을 어떻게 막지란 생각을 못했건만 그 수단이 음식으로 쓰일줄은 상상을 못했건만....이 장면을 본 순간 이건...박찬욱표식 영화같다...란 생각을 했는데 제작사 중 하나가 박찬욱이 대표로 있는 모호필름사였다.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 전혀 다른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는데 grotesque한 측면은 비슷하군...이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였다....;;; 모르는게 약이다란 말이 있다. 단백질 블럭의 실체를 모르고 블럭이 쌓인 통에서 일행이 달겨들며 먹는 모습을 보고 커티스는 차마 그것의 재료를 말하지 못한다. 난 이것 때문에 안그래도 안좋아하는 양갱을 더 먹기 싫어졌는데 양갱이 잘 팔린다니 그것도 이상하다....;;; 이 장면은 계급간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소수의 지식인 그리고 우매한 다수의 구조처럼 커티스는 위에 올라가서 진실을 알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계급간 단절은 단순히 무지한 사람들을 이용하기 위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닌 진실이 드러날 때 분열과 혼란을 막기 위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열칸의 진격에 있어서 도끼를 든 인간과 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가장 놀란 것은 도끼가 아닌 생선이였다. 어떻게 모든 생명이 죽었다 했는데 생선이 있는 것이며 열차 속 생선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저것은 어디서 잡아온 것이지?란 생각이 번뜩였다. 좀 뒤에서야 알았지만 내부 수조관을 보니 아...저기서 가져왔던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 칸에서 암시는 그 뿐이 아니다. 이 부문에서 나는 인종차별 역시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마녀 사냥 내지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KKK단이 처벌할 때나 봤음직한 횐복면이 아닌 검은복면을 쓰고 도끼를 든 모습은 영락없이 인종차별 학살을 연상시켰다. 그래서인지 후반부 환각에 쪄든 백인들이 동양인을 향해 도끼를 들고 덤비려 할 때 이 칸에서의 장면과 오버랩됐다.

 

열차 안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 위해선 필수적인 화면이 다음 칸들이다. 흙이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나무가 있는 칸, 수협생활을 가능케 하는 수족관이 그 예이다. 또한 인간의 기본 요건인 의식주의 모습은 앞칸으로 갈 수록 가진자들의 풍요로운 삶으로 더욱 초점되어 보여진다. 단백질 블럭과는 비교되는 食, 열차 안에서 맞춤 양복 衣,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들, 앞서 물공급칸을 차지할거라는 커티스 말과는 상반되는 앞쪽으로 갈 수록 물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수영장, 환각에 빠져 술을 먹고있는 사람들을 통해 꼬리칸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로은 곳은 아이들이 있는 교실칸이다. 세뇌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로봇처럼 하나같이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바깥 세상에 대한 공포심을 키워 기차만이 최선이다란 생각을 갖게하는 것은 한 독재국가를 보는 듯 하다. 정보가 차단되고 한정된 공간에서는 독재자가 생기기 쉽다. 기차가 유지되려면 인구수와 식량 배급도 문제지만 남궁민수와 같은 반란분자가 없어야 한다. 철저한 세뇌교육과 공포심은 기차 속 국민을 통제하는데 최선의 방법이다. 좀 오버해서 생각해보면 송강호가 감옥에 갇힌 진짜 이유는 크로놀의 중독이 아니라 크로놀로 폭파물을 만들 수 있다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통치자는 늘 교체되기 마련이며 이에 대한 의미로 달걀을 매치하여 생각해본다.새해 맞이로 달걀을 나눠준다고 가지고 오는데, 수많은 소품 중 달걀을 선택한 것은 부활절 달걀,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는 그 의미 때문 아닐까? 월포드의 시대는 가고 커티스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그러나 단지 권력이 바뀌는 것이 아닌 세상이 바뀐다라는 의미에서도 볼 수 있다. 송강호가 아이의 머리에 달걀을 떼리고 까먹는 장면을 보면 눈이 녹기 시작했고 이제 기차를 뚫고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

  

너무 긴 시간 컴터 앞에 앉은 관계로 후기는 대충 이쯤에서 마무리 하려고 한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은 생각보다 중심인물이라 생각된 사람들이 죄다 빨리 죽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외국 배우들로 홍보를 했으면서 정작 그 배우들의 역할이 되게 작아보인다. 커티스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을 보면 얼레 정말 죽는거야? 벌써 죽어? 이런 생각만 하게 만든다. 거기다 송강호가 웬지 엄청난 두뇌를 가진 핵심인물인 줄 알았으나 어쩌다 가끔 전선 지직 부딪히고 문을 여는 장면은 실망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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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윤혜미

등록일2013-08-17

조회수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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