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영화의 모범답안과 영웅의 일승
현실이 장마철의 날씨처럼 예측불허이며, 폭풍전야로 치닫고 변화무쌍으로 연출되어질 때 인간의 허약한 상상력에 기반을 둔 시나리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는 관객의 기대치를 넘어서기는 늘 역부족일 것이다. 관객의 관심 끌기 경쟁에서 평온한 시대에는 영화가 현실보다 우위에 있겠지만 한국과 같은 굴곡이 많은 시나리오의 역사를 써내려온 곳에서는 영화보다 현실의 영향력이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2011년 서울의 전면적 혹은 단계적 무상급식 선택을 두고 실시한 주민투표라는 큰 게임이 현실의 장에서 일어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 퍼포먼스가 펼쳐질 때 관객의 관심은 시시각각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매체로 쏠리게 된다. 이때 극장가는 성수기 속의 비수기를 맞게 될 것이다. 실제 올해 한국 영화 4대 성수기 중의 하나인 여름 방학 시즌에 대형 예산이 투여된 블록버스터의 저조한 성적은 작품 자체의 원인도 있겠지만 한국사회의 영화적 현실이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영화와 현실의 싸움에서 영화가 늘 위기에 빠지는 원인은 현실의 변화가능성에 비해 영화는 장르적 상투성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복성을 토대로 관객과 소통해왔던 장르영화는 이미 머릿속에 그려진 시나리오에 충실한 상투성의 함정과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여야하는가라는 과제를 남겨준다. 지나치게 장르 문법에 충실하면 관객에서 친절하지만 자극의 제공에 소극적이며 장르의 법칙을 맘대로 위반하면 새로운 자극은 되지만 관객의 해독 불능과 이를 통한 흥행 수익의 감소라는 산업적 모험을 감당해야한다. 여기에 장르 영화의 빛과 그늘이 놓여있다. 장르영화는 1라운드가 영화와 현실의 경쟁이라면 2라운드는 장르 문법의 준수와 위반의 조율을 통한 관객의 지지 획득 여부에 있다. 산업적으로 가장 손쉬운 선택이지만 동시에 아주 위험한 도박이 장르영화의 제작일 것이다. 2. 뻔함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매혹 혹은 장르 영화 문법의 준수 성장영화가 성장통을 지불하고 성장하는 서사적 특징을 보여준다면 <점프 아신>은 전형성을 지닌다. 유년시절부터 체조 선수의 꿈을 키워온 아신은 체육관에서 체조를 하는 친구들을 창문으로 지켜본다. 어린 아신이 창 밖에서 체육관 안을 지켜보는 장면은 체조에 대한 아신의 선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영화의 근원적 욕망과 맞닿아있다. 영화는 이웃의 침실을 훔쳐보려는 욕망과 이웃나라의 전쟁을 바라보고 싶은 욕망을 동시에 갖고 있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행위는 행위 주체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지만 여기에 한 가지 욕망이 더 추가되어있다. 그 욕망은 바라보는 자가 그가 바라보는 세계로 편입되고 싶은 희망사항이다. 아신은 체조선수인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그들과 같은 체조선수가 되고 싶은 희망을 보는 것이다. 결국 아신은 체조선수로 편입되어 훈련을 하고 열심히 체조를 한다. 하지만 비인기 종목인 체조는 자신의 생계와 가족의 부양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운동선수의 길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부재로 판단한 모친은 자식의 운동을 반대한다. 결국 코치에게 찾아가 운동을 그만두게 한다. 체육관에서 벗어난 아신은 수족관에서 방생된 물고기처럼 야생의 사회에 적응하는 일은 생존에 목숨을 거는 물고기의 바다 적응에 가깝다. 체육관이라는 현실의 수족관에서 나온 물고기는 20대라는 질풍노도와도 직면해야한다. 야생의 바다와 같은 사회의 적응과 꿈을 잃은 20대의 질풍노도의 파도타기는 폭력세계라는 일탈의 길로 재촉한다. 정신과 의사 하지현은 “내가 진짜 원하는 내 길을 만들어가는 시도와 실패(trial and error)의 연속 안에 20대와 30대 초반의 질풍노도가 있다”고 했다. 아신의 질풍노도는 길 찾기의 실패가 아닌 타의에 의한 길에서 추방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파고의 높이를 가늠 할 수 있다. 일탈의 개연성은 타의에 의한 꿈의 좌절과 준비되지 않은 사회로 던져짐에 있다. 아신의 사회 체험은 폭력으로 점철되며 여기서 성장영화는 액션영화로 자리바꿈을 한다. 아신과 친구 핑클은 예기치 않은 시비로 싸움을 벌이고 싸움은 복수와 보복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인간은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을 두려움에 몰아넣는다고 한다. 이들은 스스로 삶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타인들에게 폭력을 통해 두려움을 주입한다. 하지만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면서 더 큰 구체적인 두려움에 직면해야하는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한다. 결국 아신과 그의 친구는 치명적인 사고를 치고 도피하게 된다. 그 와중에 아신은 친구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는 아신의 또 다른 분신이다. 친구의 죽음은 바로 폭력배로 변신한 아신의 죽음으로 읽을 수 있다. 친구의 죽음, 폭력세계에 있는 자신의 죽음은 거듭남을 위한 제의적 죽음이다. 친구의 죽음으로 아신은 보스를 찾아가서 체육관으로 복귀하여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전직 체조선수였던 조직의 보스는 일년 안에 금메달을 딸 수 있다면 허락하겠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어밥을 만들어 버리겠다고 협박을 한다. 아신은 결국 체육관으로 돌아오고 지옥 같은 훈련을 시작한다. 아신의 훈련이 몽타쥬로 처리되며 희극적인 장치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아신이 기초체력 단련을 위해 트랙을 돌다 지치면 아신에게 복수하려는 조직폭력배를 투입하여 계속 달리게 한다. 보복을 피하고자 하는 아신은 열심히 달리고 조직폭력배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폭행하기 위해 뛴다. 이는 전직 체조선수출신이자, 현직 체조코치의 친구인 조직폭력배 보스의 계획이며 아신의 훈련을 돕기 위한 귀여운 전략이었다. 결국 아신은 어머니와 자신을 지지한 여자 교환수와 조직폭력배 보스의 응원 속에서 체조 경기에 출전한다. 이와 같은 서사는 성장영화와 스포츠 영화의 장르적 결합의 소산이다. <점프 아신>은 성장영화의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성인이 된다’와 스포츠 영화의 ‘운동 선수가 예기치 못한 장애물로 좌절하다가 이를 극복하여 옛 명성을 되찾거나 우승한다’는 문법에 딱 맞아떨어진다. 3. 영웅의 일승 아신은 유년시절부터 체조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모친의 반대로 좌절하여 갱스터가 되었다. 하지만 체육관에 대한, 체조선수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국제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 여부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관중의 환호와 착지의 성공으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룬 것으로 처리되었다. 즉 주인공이 희망하는 체조 선수의 생활과 체조선수가 염원하는 금메달의 획득이라는 꿈을 이룬 것이다. 이는 영웅이 시련을 극복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동일하며 이 영화는 주인공으로 대변되는 영웅의 1승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영웅의 1승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아신은 유년기에 금메달을 받으며 영웅의 표지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모친의 반대와 폭력세계로 일탈이라는 시련의 시기를 맞는다. 인간의 미성숙한 정신의 성장을 삼단계로 나눌 때 일 단계는 어린아이 같은 치기어린 장난의 시기이며 이단계는 모토 사이클을 타고 달리며 스피드를 느끼는 것과 같은 무모한 자극을 좇는 경향의 단계이며 삼단계는 자기희생을 통한 이상주의를 추구한다. 아신은 폭력이라는 자극으로 경도라는 2단계에서 친구의 죽음을 통한 자각으로 그 단계를 졸업한다. 신화에서 영웅은 용과 이무기 혹은 스핑크스와 같은 구체적인 괴물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영웅으로 등극한다. 이때 용과 이무기와 스핑크스는 구체적인 괴물이지만 동시에 악의 대표성을 지닌다. 영웅은 구체적인 괴물인 악과 자기 내면의 악이라는 괴물과 싸움에서 승리해야 스스로 자유를 획득하며 동시에 영웅의 자리에 오른다. 영화의 주인공도 외부의 장애라는 괴물을 퇴치한 다음에 진정한 주인공의 자리에 오른다. 영웅은 영웅이 되기 위해서 괴물과 싸움에서 1승을 거두어야하며 , 영화의 주인공은 주인공이 되기 위해 혹은 관객의 지지를 받기 위해 자신이 출전하는 경기에서 승리해야한다. 영웅 신화와 영화가 만나는 지점 혹은 영웅 신화를 영화가 수혈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놓여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언제나 임무를 수행한 영웅의 귀환을 지지하는 가족과 지지자들의 환영에 있다. 스포츠 영화에서는 우승을 기원하는 관객의 응원과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가족의 감격으로 표현한다. 아신의 경기를 지켜보는 객석에는 아신의 가족과 아신을 지지하는 전직 수영 선수 출신의 교환수와 전직 체조선수 출신의 조직폭력배 보스와 그의 부하들의 시선이 있었다. 그들의 시선 속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시선도 존재한다. 바로 관객의 지지이다. 관객은 주인공의 1승을 바라는 등장인물과 같은 심정적인 태도로 경기장이 아닌 극장의 객석에 앉아있다. 영웅이 용을 퇴치하기를 희망하면서, 주인공이 우승하기를 희망하는 관객의 시선은 세상에서 가장 선한 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