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Incendies)
‘종교가 평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다.’ 과연 오늘날의 세계정세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오히려 종교는 전쟁과 살육과 비극과 분노 등 평화를 거슬리는 온갖 것을 가져온다고 정의내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필자의 눈에 <그을린 사랑>(드니 뷜뇌브 감독, 극영화, 캐나다, 2010년, 130분)은 종교가 파생시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그려낸 영화로 비쳐졌다. 특히, 십자가를 목에 걸고 성모상을 개머리판에 붙인 그리스도교 전사들의 무슬림 학살 장면은 감내하기 힘들 정도였다. 바로 그 장면 이후 영화의 주인공인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의 인생은 바닥을 향해 직진한다. 하지만 바닥에는 상상도 못할 훨씬 더 큰 비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근에 이렇게 충격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비록 실화는 아니라지만 설령 실화라 한들 추호도 그 개연성을 의심하지 않을만한 작품이다. 중동 국가 레바논은 1943년 독립한 이후 줄곧 그리스도교 세력이 정권을 차지했다. 그러다가 1958년 친 서방 정책을 내세우며 재선을 노리는 샤문 대통령을 반대해 이슬람 세력이 국민통일전선을 결성했고 국민당 정부는 이슬람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했다. 그 후로 레바논은 내전 상태에 돌입했으며 지금까지도 평화는 요원한 형편이다. 그리스도교 전사들의 말처럼 내 가족을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왈은 복잡한 개인사를 갖고 있다. 그녀의 출신 가정도 그렇고, 이교도와의 사랑에서 낳은 아기와 그 아기를 포기한 것도 그렇고, 이슬람 전사가 되어 내전에 앞장선 것도 비극의 강도를 더했고, 결국 캐나다에 정착했지만 그곳에서 오히려 과거에 더욱 집착하는 계기가 주어졌다. 꿈에서조차 그녀를 괴롭혔던 잔인한 기억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 까닭이었다.
나왈은 죽기 전에 세통의 편지를 남긴다. 생이별을 한 아들과 쌍둥이 자녀와 쌍둥이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 편지가 처음부터 영화의 진행을 풀어가는 열쇠로 작용해 관객들이 한눈 안 팔고 쫓아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낸다. 인간성의 파괴를 다룬 잔인한 고발영화지만 다른 한 면에서 보면 일종의 추리극으로 간주할 수 있는 대목이다. 쌍둥이 자녀로 나온 잔느(멜리사 디조르미스-플린)와 시몬(맥심 고데테)이 추리를 풀어나가는 역할을 잘 소화해 냈다. 두 배우의 건조하면서도 내면의 감정을 실은 연기 덕분에 나왈의 비극에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좋은 연기와 연출이었다.
감독은 몇 장면에서 충격적인 대비를 보여주었다. 아직 판단력이 서지 않는 어린이들이 전사로 발탁되는 장면, 시몬이 눈을 가린 채 끌려가 이슬람 반군 지도자인 삼세딘을 만나는 장면, 먹을 것을 찾아 전쟁터에 나온 아이들을 쏘는 저격수, 비극의 실체를 알려 주는 수영장 장면 등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 역시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 덕분이다.
대학생이었던 나왈은 레바논 내전의 위기가 닥치자 무슬림 난민들이 몰려있어 위험한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 때 누군가 나왈에게 그녀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준다. 왜 종교도 다른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무슬림 지역으로 가는지 질문한 것이다. 그러자 나왈은 대답한다. “우리는 평화를 지지합니다. 종교와는 무관해요.” 종교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광기 앞에서 나왈의 신념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무관할 줄 알았던 종교는 결국 그녀의 존재를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만다.
내전을 겪고 있는 나라의 모든 국민은 비참한 운명으로 떠밀려 들어간다. 악인도 없고 선인도 없이 오직 복수만이 전쟁을 움직여나간다. 예외란 없다. 그런 점에서 세계대전과 내전은 그 성격이 다르다. 원수를 향한 개인적인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한 결코 전쟁을 멈출 수 없으니 말이다. 나왈은 쌍둥이에게 남긴 편지를 통해 우리에게 깊은 가르침을 전달한다. 그녀가 분노의 끈을 끊고 나서야 진정한 엄마가 될 수 있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함께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도 같은 맥락에서 복수의 포기를 말씀한 바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말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어라.”(마태 5,39-40) 구태여 예를 들지 않더라도 폭력이 언제나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즉, 상대가 폭력을 쓸 때 다시 폭력으로 되갚는다면 이는 폭력의 악순환이라는 고리에 말려들고 마는 일이다. 이런 폭력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을 꿰뚫어본 예수는, 오히려 폭력을 포기하여 그 악순환의 고리를 지금 끊어야한다고 말한다. 이것만이 바로 평화를 가져오는 유일한 길이다.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 나왈은 그야말로 길고도 굴곡진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곤 드디어 죽음과 함께 찾아온 평화! 우리의 내면까지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 수작이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