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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 감독의 『도리화가』(桃李花歌, The Sound Of A Flower)

이종필 감독의 도리화가(桃李花歌, The Sound Of A Flower)

 

조선후기, 판소리를 집대성한 동리(桐里, 18121884) 신재효(申在孝)는 고창 출신의 위대한 예술가이다. 서른다섯이나 어린 제자 진채선 역시 고창 출생으로 열일곱에 판소리학당 동리정사(桐里精舍)의 수장 신재효’(류승룡) 문하생이 되어 판소리를 배운 뒤 조선 최초의 여성소리꾼이 된다. 이 시대극 영화는 연대기적으로 장면을 구성해 나간다.

 

복숭아 꽃, 자두 꽃 만발한 시절의 노래는 힘든 과정을 뚫고 주인공 진채선이 아름다운 판소리꾼으로 우뚝 섰음을 상징한다. 스물네번 바람불어 만화방창(萬化方暢) 봄이 되니/구경가세 구경가세 도리화 구경가세/도화는 곱게 붉고 희도 흴사 오얏꽃이/향기 쫓는 세요충은 젓대 북이 따라가고/보기 좋은 범나비는 너픈 너픈 날아든다. (신재효 도리화가)

 

여성 소리꾼 진채선과 스승 신재효와의 러브 스토리에 다양한 풍속을 섞고, 그들의 일대기에 인생의 사계와 버금가는 춘하추동의 아름다음이 카메라에 포착되어 있다. 판소리를 소재로 한 실존 예인(藝人)의 일대기는 진한 감동을 준다. 도리화가는 사실(史實)의 쓰린 부분을 걷어내고 간결하게 신재효와 진채선, 소리선생 김세종(송새벽), 문하생인 칠성(이동휘)과 용복(안재홍), 대원군(김남길)을 시대성과 판소리를 대신하는 인물로 배치시킨다.

 

모녀가 눈밭을 걸어가는 설경으로 시작된 영화는 비천한 무당 출신인 어미가 죽기 전에 기방에 어린 딸을 맡기면서 생존을 부탁한다. 저자거리에는 구경꾼들이 즐비한 가운데 신재효의 판소리 심청가가락이 들리고, 이 영화가 조선창극사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린다. 어린 진채선(배수지)에게 신재효는 어미의 죽음을 초월하는 준엄, 신비, 여유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꽃이 된 노래, 채선에게 신재효의 판소리 가락은 영혼을 치유하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마음껏 울거라, 울다보면 웃게 된다.”는 신재효의 말이 채선의 가슴 속에 각인되면서, “그것이 판소리인지, 심청가 소리가 제 이야기 같아서 저는 소리꾼이 되고 싶었습니다.” 라고 화답하면서 영화는 프롤로그를 넘어선다. 신재효와 진채선(배수지)을 중심으로 영화는 전개된다.

 

기방, 채선이 마루 청소를 하며 소리를 흉내 낸다. 그녀는 동리정사의 판소리 연습 광경(복식호흡, 근력 키우기 등)을 훔쳐보며 판소리 어깨너머 공부를 시작한다. 판소리꾼의 관상 보기, 기방 언니들의 화장 등 판소리꾼으로서 해야 할 기초 공부를 스스로 해야 하는 그녀는 부엌 앞에서 춘향을 떠올리고, 득음을 위해 강가에서 연습에 몰두하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너림새(연기력)란 말을 처음 듣게 된 채선은 그 너림새를 위한 일환으로 심청의 마음이 되어 계곡에서 물에 뛰어드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녀는 슬프고, 아프고, 이쁜마음을 헤아려주는 판소리가 필요했고, 풀잎에서 이슬이 반짝이는 것처럼 소리가 이쁘게 다가온다. 그녀는 판소리꾼이 될 결심을 하고 신재효에게 청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그 청을 거절한다.

 

신재효는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의 4대 법례를 마련하여 판소리의 연기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습을 독려했다. 채선은 남장을 마다않고 동리정사에 입사하고 동네의 개를 모두 깨울 정도로 연습에 몰두 한다. 신재효는 채선을 못 미다워 한다. 경복궁 중건 기념 판소리대회 낙성연소식에 신재효는 춘향가를 구사할 수 있는 채선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산에서 소리를 익혀 한양으로 가자는 심재효의 결정에 따라 소리꾼 일행은 폭포가 있는 산 중으로 향한다. 채선이 회초리를 맞아가며, 빗속에 연습하다 쓰러져 똥물을 약으로 먹으며 이겨낸 훈련은 성공한다. 1867, 한양에 입성하고 경회루 경연에 참가한 일행은 채선이 금기시된 여자임이 밝혀지자 모두 감옥에 갇힌다. 당시 판소리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신재효와 귀명창(판소리에서 창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 대원군의 담판으로 낙성연에서 노래를 하게 된 채선은 여성의 판소리로 군중들로부터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장원을 하게 되고 그들은 목숨을 건진다. 대원군에게 채선을 빼앗긴 신재효는 채선을 마마라고 호칭하면서 귀향하고, 서로는 그리워하면서 지낸다. 함박눈이 내리던 날, 채선은 대원군의 실각으로 출궁이 허용되자 한걸음으로 동리정사로 달려간다. 서로의 만남은 없다. 그리움이 배가되는 설정이다.

도리화가는 연기자들의 등장인물에 부합되는 뜨거운 연기, 전국의 절경을 담아, 판소리라는 장르의 위대함을 부각시키고, 시대상의 아픔을 전달시킨 이종필 감독의 노력이 생동감 있게 영화로 탄생된 것이다. 서편제의 비주얼과 훈련생들의 수련과정 등 낯익은 장면들이 스키마 효과를 일으켜 이 영화를 더욱 친숙하게 만들었다. 잘 만든 영화를 찬()한다.

 

장석용(영화평론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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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장석용

등록일2016-06-12

조회수7,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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