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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 자극(刺戟)이 극(劇)으로 전환되는 순간 - 긴장을 빚는 배우 엄태구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많은 단어들이 오용 속에서 허우적대지만 ‘극적(劇的, Dramatic)’이라는 표현만큼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드물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건의 앞머리를 장식할 때 자주 사용되는 ‘극적’이라는 표현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돌출되는 상황에 대한 의미화를 포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사용되는 ‘극적’은 평범함을 넘어서는 반응을 유도하는 ‘자극적’이라는 관형사나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을 가리키는 ‘우연히’이라는 부사로 대체한다고 해도 아무런 무리가 없으니 ‘극적’의 입장에선 억울한 일일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극적’이라는 표현은 극의 사건 전개가 반드시 긴장을 (그것도 내면적으로 획득되는) 포함하고 있어야 하며 그 긴장이 이야기요소들의 필연적이고 개연성 있는 결합으로 기능할 때에야 앞세울 수 있는, 꽤나 어렵고도 지난한 과정 후에야 붙일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거나 우연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행동이든 감정이든, 무엇인가를 넘치게 만들 때, 그것은 평상심을 넘어서는 감각을 깨워낸다. 대체로 조폭이나 군인과 같이 폭력이 쉽사리 용인되는 집단의 배역들은 여기에 쉽게 가 닿는다. 피가 튀는 격한 싸움신이나 총성이 난무하는 전투신이 관객의 주목을 끌지는 몰라도 사실 그 배역을 맡은 배우 개개인에게 그리 긴 여운을 남기는 인상을 주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순간적으로 유발시킬 수 있는 자극은 그만큼 쉽게 사라지기에, 어쩌다 갑자기 일어난 우연한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없기에 그 배역 앞에 선 이들은 거창한 스펙터클을 가장한 신이 지나고 나면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재미있게도 배우 엄태구는 늘 이 역할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음영이 짙게 드리운 얼굴과 낮은 목소리, 다소 마른 듯한 체구와 구부정한 자세는 그가 서있을 곳을 그리 평탄치 않은 곳으로 설정하게 했다. 엄태구는 껄렁껄렁한 백수이거나 깡패, 일본 경찰이거나 군인 등 자극만으로 소비되기 쉬운 캐릭터로 관객을 찾았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극적인 상황으로 밀어 넣으며 그 역할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그가 극의 전체를 파헤치고 들어갈 분명한 의지를 그 스스로 만들어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역할의 경중으로 주연과 조연을 구분하는 것이 그리 유효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에 늘 엄태구가 있었고, 그는 자신의 행동에 의문을 따라붙게 함으로 극 속에 뛰어들었다.

삶에 대한 의지가 만들어낸 긴장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목소리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영화 <유숙자>(2010)는 배우 엄태구가 그의 몸만으로 일으킬 수 있는 긴장의 최대치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그가 단순히 낮은 음성만으로 위압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 단편영화는 마치 엄태구의 몸이 이미 영화적 긴장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아슬아슬함 그 자체를 엄태구를 통해 그려낸다.
 
  
▲ <유숙자>(2010)

남들이 먹고 내놓은 중국음식 그릇의 잔반을 긁어먹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강아지를 경계하듯 바라보는 만식의 눈빛은 이후 강아지의 머리를 조준하여 빈병을 떨어뜨리는 장면과 이어지면서 그가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해낸다. 핑크톤으로 꾸며놓은 방에 들어선 만식이 만들어낸 이질감은 그가 이 공간에 있어서는 안될 이라는 것까지를 한순간에 제시한다.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와 삐죽 솟은 키, 코언저리와 광대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는 남의 집에 들어온 것임에도 오히려 편안하게 움직이는 그 행동들과 결합되면서 그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불안함의 정체를 그의 존재에서 찾게 한다. 만식이 자신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발가벗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머리와 국부의 털을 잘라내는 장면은 이 불안의 정점을 찍는다. 파리하게 마른 몸과 파르라니 깎아버린 머리는 그가 이렇게라도 살아남겠다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집주인이 들어온 후 침대 밑으로, 옷들 사이로 숨은 채 눈만 움직이는 그의 얼굴은 그가 불안하게나마 종국에는 살아남고자 하는 누군가들이라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강렬했던 이 모습을 조금은 편안하게 내려놓은 듯 보이는 영화가 <잉투기>(2013)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엄태구는 삶의 지향과 현실이 얼마나 큰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꽤나 깊은 질문을 던지며 스크린에 섰다. 그를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린 이 영화에서 엄태구는 본명보다 젖존슨이나 칡콩팥을 앞세우고, 온라인에서의 싸움을 굳이 현피로 까발리려는 이들의 삶 속에 태식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 <잉투기>는 현피, 몰락한 아이돌, 디씨 갤러리, 문제아, 뚜렷한 목표가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모여 있는 잉여들의 유희판처럼 취급되었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찌질한 이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분리하려 애쓰는 태식의 모습은 이 영화가 삶에 대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 <잉투기>(2013)
 
젖존슨한테 ‘기습적으로 당’한 모습이 인터넷에 깔리고 ‘쪽팔리게’ 자신의 신상이 모두 털린 상황은 태식을 움츠러들게 한다. 누가 알아볼까 벽만 보고 걸으며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태식의 모습은 그들의 세계에서 ‘현피’에서 ‘발린’ 상황이 그들의 존재를 세우는 데에 얼마나 치명적인 일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건 후 태식은 분노를 온몸에 감고 있는 이처럼 사소한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젖존슨에게 맞았던 트라우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짜증까지도 무겁게 짊어진다. 

태식은 화난다, 혹은 때리고 싶다 라는 일차원적인 감정을 넘어 젖존슨 같이 치사한 놈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복수를 결심한다. 남들은 태식까지도 비슷비슷한 이로 묶어 볼지 모르지만 태식은 이들과 자신이 절대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너무도 절박하게 드러내고 싶어 한다. 엄태구는 누구의 질문에도 한 템포 느리게 대답하며, 자신이 무시하고픈 상대와는 쉽게 마주보지도 않고 비껴선 채 거리를 두는 것으로 그가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매우 못마땅하면서도 잘 살아내고자 하는 그 모순적인 태도를 표현해 낸다. 자신과 함께 하는 영자(류혜영)와 희준(권율)에게조차 연신 그렇게 사는 것이 쪽팔리지 않느냐며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웅얼대고 욕을 내뱉는 태식의 모습은 어떻게든 자신이 현재와는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처절한 소망을 표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잉투기>(2013)

그러나 젖존슨이 자신과 대결을 하기로 한 날 자살하면서 태식은 자신이 그들과 차원이 다른 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기회를 상실한다. 이때의 절망감. 태식은 거리로 나가 누가 자신을 카메라로 찍던 간에 때리고 터지고 맞고 뒹굴면서 결국 자신이 그들과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버리고 만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똑바로 바라보며 받아내는 모습은 젖존슨의 트라우마를 씻어낸다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소용없음을 너무도 처절하게 인정하는 방법이다. 그가 이 영화에서 단 한 번의 미소를 보이는 마지막 순간은 많은 청년들이 허덕대다 결국에는 자신이 보잘 것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는 그 아픈 순간에 대한 위로처럼 보인다. 
 
  
▲ <차이나타운>(2015)

이렇게 엄태구는 현재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는 이들을 만들어낸다. 한참을 생각한 후에야 내놓는 단답형의 대답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장면들이 그에게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겪어온 지루한 삶에 그리 적절한 해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차이나타운>(2015)의 우곤 역시 그렇다. 버림받은 이들이 엄마(김혜수)라 부르는 이 밑에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그린 이 영화에서 우곤은 적어도 ‘우리’가 ‘식구’로 묶이기를 희망한다. 절대적인 상하 복종관계에 놓여있던 이들과 다르게 우곤은 엄마와 함께하면서도 그의 행동에 유일하게 제동을 거는 이이다. 물론 그것은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감정이라기보다 늘 어두운 구석자리에 앉아 엄마와 일영(김고은)의 대화와 행동을 주시하며 꾹꾹 눌러 담았던 것을 천천히 흘려보내는 한 마디일 뿐이다. 일영의 얼굴에 난 상처에 왜 그랬냐는 말 대신 반창고를 내밀고, 죽어가는 순간조차 덤덤하게 아픈 것 같다고 말을 잇는 그의 행동은 결국 식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버림받은 자의 것이 되었다. 

엄태구가 만들어갔던 인물들은 늘 장고(長考) 끝에 한마디씩을 툭툭 내 뱉는 이들이었다. 그 생각의 시작은 늘 내가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닿아 있었기에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인물들의 삶을 이해하는 할 때에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엄태구는 조금 더 딱딱한 긴장을 불러일으킬 인물들과 함께했다. 대체로 제복을 입고 등장했던 그의 얼굴엔 음영이 더욱 짙게 드리워있었다. 

강렬한 눈빛으로 그려낸 불안의 순간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끝까지 믿었던 엄태구의 인물들은 군인이거나 경찰이라는 이름을 달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그의 얼굴, 목소리, 뚫어질 듯 사람을 응시하던 그 눈빛 등은 그가 나와 반대편에 서 있을 때 얼마나 공포스러운 인간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서열을 매겨도 될 만큼 강력한 것으로 자리했다. 엄태구의 인물들은 어느 것 하나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고, 언제나 감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상대를 눌러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긴장을 폭발시키는 위치에 자리했다.

뜯어내자니 큰 상처가 남을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영 쓰라리고 신경 쓰이는 손톱 밑 거스러미처럼 엄태구는 상대를 기분 나쁘게 도발하고 있었다. <인간중독>(2014)에서 엄태구가 분(扮)한 김준위는 김진평(송승헌)이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한 여인을 만나면서 생긴 비밀을 미묘하게 건드리며 불편함을 자아낸다. 조금은 껄렁한 모습으로, 하극상과 농담의 경계를 미묘하게 오가는 김준위는 김진평의 신경을 천천히 긁어댄다. 선임인 김진평이 한 번 눈감아달라며 부탁하는 상황에서도 김준위는 삐딱하게 앉아 김진평의 속을 들여다보듯 응시하거나 피식 웃음을 흘리며 쉽게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를 대하는 김준위의 모습들은 그가 어떻게 김진평의 평정심을 흔들어대고 있는지를 너무도 적확하게 보여준다.

군복을 입고 등장한 엄태구는 마치 그것이 여태까지 입어온 옷인 양 꼭 들어맞는 몸가짐을 보여주었다. 허리에 무심히 얹은 손, 누군가에게 쉽게 반응하지 않은 심드렁함, 김준위는 선임의 불안을 눈치 챘을 때의 묘한 쾌감을 얼굴에 걸었고, 각 잡힌 행동 사이에서 드러나는 비열함을 내비쳤다. 결국 선임이 먼저 눈을 돌리게 할 만큼 쏘아보는 김준위의 눈빛은 자신의 상황이 위험하다고 감지하고서야 잠시 사그러들지만, 늘 김진평의 주변을 맴돌았고, 김진평이 종가흔(임지연)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김진평을 향하는 김준위의 눈길은 그를 그리고 관객을 긴장케 했다.  
 
  
▲ <밀정>(2016)

이렇게 엄태구가 불러들이는 긴장감을 가장 극한으로 밀어붙인 인물이 <밀정>(2016)의 하시모토였을 것이다. 하시모토는 엄태구의 생김에 가장 인상적인 의미들을 부여했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목의 중간까지를 타이트하게 감고 있는 검은 만달린 칼라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빗어 넘긴 머리, 검고 짙은 눈썹 사이로 드러나는 그의 얼굴은 마치 날카로움을 그대로 담은 듯 베일 것처럼 자리했다. 서로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정출(송강호)과 대화를 할 때에 조차 일본어를 사용하는 것에서 드러나는 그의 야망은 이정출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순간부터 대상을 탐색하는 매와 같은 집요함을 일으킨다.

그의 광기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자신의 부하 우마에(정도원)을 처벌할 때 절정에 달한다. 우마에의 뺨을 올려붙이는 동안 단 한 번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하시모토의 잔인함은 뺨에 가 닿는 손에서 묻어나는 흥분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하게 내뱉는 그 말들을 통해 극대화된다. 이정출의 면전에서 갑작스레 터트리는 하시모토의 분노가 긴장을 일으키는 것은 이러한 그의 성격이 집약된 결과이다. 하시모토를 따돌리려는 이정출과 그것을 눈치 채고 역시 이정출을 따돌려 성과를 올리려는 하시모토의 숨바꼭질은 하시모토의 절제된 행동 속에서 소름끼치도록 불안하게 형상화된다. 
 
  
▲ <밀정>(2016)

<밀정>의 하시모토는 단 한 순간도 웃지 않으며, 마치 홀로 무채색 공간에 놓인 듯 집착과 분노 이상의 감정을 포착해낼 수 없는 인물처럼 보인다. 하시모토가 분노에 못 이겨 이정출을 향해 삿대질을 할 때, 그리고 바로 자신이 분노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손짓을 스스로 거두며 다시금 평정심을 찾는 그 철저함으로 엄태구는 제국을 위해 일하는 피식민지인의 콤플렉스를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이정출이 김우진(공유)을 만나고, 정채산(이병헌)을 만나는 그 순간 순간이 불안한 것은 이정출 뒤에 늘 따라붙어 있던 하시모토의 눈길이 이처럼 차갑고 잔인하며 한편으로는 욕망으로 들끓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엄태구는 너무도 지독해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순간을 누구보다 진득하게 만들어낸다. 1980년 5월 18일의 광주 시가지를 간신히 빠져나온 두 남자를 가로막았던 검문소의 중사, 엄태구가 그 군인으로 등장했을 때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길고 긴 추격을 피해 간신히 좁은 시골길로 돌아선 두 남자의 얼굴에는 긴장과 안도가 같은 정도로 쌓여 있었고, 보통 피로라 부를 그 상태는 두 남자의 더럽혀진 옷에, 흐트러진 머리에, 창백해진 얼굴과 입술에 그대로 묻어났다. 그들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을 목도했는지를 알기에, 그리고 그 일들이 밖으로 알려져야만 한다는 것을 믿기에, 우리는 그들의 피로를 잠시나마 눈감고 그저 그곳을 지나가기만을 바랐지만, 검문소의 군인들은 기어이 그 앞을 막아섰다. 
 
  
▲ <택시운전사>(2017)

“둘 다 내리십시오.”라는 정중한 듯 하지만 그 무엇보다 고압적인 말투, 손을 까딱거리며 내리라는 시늉을 하던 군인의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모두를 절망하게 했다. 광주를 다 빠져나왔다고 믿었던 순간에 마주친 이 상황은 두 남자의 피로한 얼굴을 다시 돌아보게 했고, 그 얼굴에서 광주의 실상을 담은 필름을 빼앗길 수도 아니 어쩌면 그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절망이 읽혔다. 그러나 차의 트렁크를 뒤지다 발견한 서울 번호판, 그것을 발견한 순간 정지하는 듯 보이던 중사의 얼굴에는 수많은 감정이 스쳤다. 그리고 그 표정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이 트렁크를 닫으며 “보내줘.”라고 낮게 외쳤던 한 마디는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다 차라리 눈물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서울 번호판을 보는 순간 굳어졌던 그의 표정은 군인으로써 보아야했을 무수히 많은 상황들, 그리고 그조차 이해할 수 없었을 그 상황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가 닿는 것처럼 보였다.

터덜터덜 걸으며 물음표를 달고 있는 후임들의 눈빛을 조용히 무시하며 중사는 그렇게 택시를 보냈다. 택시가 움직이는 순간 외국인이 탄 택시는 무조건 잡으라는 무전 소리에도 중사는 미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택시가 떠나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본다. 택시를 응시하다 시선을 떨구는 중사의 모습은 이 모든 것을 모를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우리’가 가질 안타까움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택시운전사>에서 엄태구가 등장한 것은 3분이 조금 넘는 시간일 뿐이었지만, 그의 모습은 우리의 감정을 읽어줌으로써 깊이 각인되었다.  

진득한 긴장이 지나간 후를 다지는 배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튀어나오는 것들만큼 당혹스러운 것은 없다. 책이 구겨져라 눌러가며 책장을 채운 후에야 나타나는 한두 권의 책들, 원고를 마무리 할 무렵 잘못 누른 한두 개의 단축키. 따지고 보면 크게 문제될 것 없는 이 사소한 일들이 굳이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은 더 이상 방해할 것이 없다고 긴장을 풀어버린 순간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한두 권의 책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며칠씩 방바닥을 뒹굴거나, 날아가 버린 원고는 홧김에 잠들어버린 사이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어버리거나 다시 세상에 나오지 못할 확률이 크다. 어떤 것과도 대결할 힘을 남겨두지 않았을 때 벌어진 일들은 이렇게 포기로 이어진다.

엄태구는 이처럼 모든 긴장이 풀어져버린 상황에 튀어나오는 돌발처럼 존재한다. 한 가지 차이점은 그의 집요함이 포기를 부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엄태구는 그 반대편의 힘을 불러일으키면서 팽팽히 맞서는 것으로 극을 완성해 낸다. 그는 늘 그가 도대체 무엇을 왜 그렇게까지 하려고 하는지를 설득해내는 것은 이 팽팽함으로 인한 결과였다. 단편영화 <숲>(2012)과 같은 스릴러, <시시콜콜한 이야기>(2017)와 같은 소박하고 귀여운 연애담에서 까지도 엄태구는 상당히 예민하고 날카로운 방식으로 템포를 조절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언뜻 조용한 듯 보이는 엄태구의 인물들은 침묵 이후 어떤 말이나 행동이 튀어나올지 몰라 늘 긴장하게 만들면서 극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늘 긴장으로 선뜩하다 해도 다소 강한 불안이 지배한다 해도 우리는 엄태구의 세계에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유숙자>(2010)
<숲>(2012)
<잉투기>(2013)
<인간중독>(2014)
<차이나타운>(2015)
<밀정>(2016)
<택시운전사>(2017)
<시시콜콜한 이야기>(2017)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 송아름
영화평론가.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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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6,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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