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센터

customer center

070.8868.6303

[문학산] 사회적 공분과 복수 서사 ― 장창원의 <꾼>

객석과 스크린의 거리는 관객의 심리적 안정감을 부여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복합 상영관의 안락한 의자가 방탄복처럼 스크린의 위험을 차단해준다면 객석에서 스크린의 사이는 영화와 현실의 넘을 수 없는 장벽을 확인시켜주는 안전장치이다. 이 안전장치는 영화와 현실의 거리를 통해 예술적 모험과 악행과 선행을 동시에 허용해준다. 비판적 관객은 영화 텍스트 세계와 동일시하기도 하고 성찰적 각성도 하지만 많은 관객은 텍스트의 세계를 안전한 거리에서 바라보면서 자신의 심금을 건드는 선에서 봉합한다. 


히치콕의 영화는 두 개의 맥거핀을 숨겨두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관객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눈속임용 맥거핀이고 다른 하나는 주제를 감추기 위한 서사적 속임수 이다. 특히 전자는 후자를 위한 희생양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창>(1954)은 맞은 편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살인자를 밝혀내는 서사이지만 이면에는 리사와 제프리의 갈등을 해소하고 사랑의 확인을 위한 심리적 장애의 해결과정이 놓여있다. <오명>, <북북서를 진로를 돌려라> 모두 어려운 장애를 헤쳐나가면서 두 남녀의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고 연인으로 성장하는 일종의 성장 영화다. 

히치콕의 영화가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린 무죄한 인간이 스스로의 결백을 입증하는 서사’를 지향한다면 2017년 한국영화의 한 경향은 ‘영화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사회적 공분을 통해 스스로 피해자임을 입증하는 서사’에 가깝다. 히치콕은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면서 사건의 해결과 사랑의 획득이라는 전리품을 선물로 받는다. 한국 영화는 사회적 공분을 동력으로 하여 이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면서 희생자로 상징적 아버지를 소환한다. 히치콕이 사랑 성공담을 지향한다면 한국영화는 처벌과 복수의 완성으로 귀결된다. 
 
  
▲ <꾼>, <특별시민>
 

<특별시민>의 변종구(최민식 분)는 서울 시장이며 다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재선을 위해 측근을 범죄에 동원하고 자신의 음주운전 사고를 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서울시장 선거본부는 범죄조직의 패밀리화되고 서울시장은 조직의 보스로 전락한다. 이를 통해 정치인과 상징적 아버지들은 그의 일상화된 악행으로 인해 처벌의 대상이 되고 관객의 사회적 공분은 그들을 희생양의 자리로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사회적 공분을 동한 상징적 아버지의 처벌과 희화화는 한국 대중영화의  서사적 전형으로 고착되어간다. 

정창원의 <꾼>은 범죄 집단이 다른 범죄 집단을 사기치거나 강탈하는 전형적인 케이퍼 무비 (caper movie)이다. 하지만 케이퍼 무비에 한국적인 요소가 개입한다. 그것은 범죄집단이나 국가기관에 의한 가족의 피해를 사적 복수로 해결하는 복수의 서사이다. 최동훈의 <도둑들>과 <범죄의 재구성>이 한국형 케이퍼 무비의 전형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두 영화 모두 형과 아버지라는 가족의 피해라는 트라우마를 동생과 아들이 복수한다. 서사의 중심은 케이퍼 무비의 속이는 행위이지만 내밀한 곳에서는 가족의 복수가 사회적 공분 대신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꾼>은 케이퍼 무비의 형식을 통해 사회적 공분과 가족의 복수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여 케이퍼 무비의 진화를 보여준다. 
 
  
▲ <꾼>
 

장두칠은 거대한 사기 사건으로 종적을 감추었다가 중국에서 사망하였다. 하지만 한 사기꾼이 장두칠을 만났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사기꾼 황지성(현빈 분)은 장두칠을 잡기위한 시나리오를 검사 박희수(유지태 분)에게 제안하고 박희수는 장두칠의 리스트와 정치자금 문제를 덮기위해 이를 수락한다. 이 과정에서 황지성의 부친이 검사인 박희수에 의해 처형된 사실이 밝혀지면서 황지성의 복수극으로 반전된다. 박희수와 대선 후보인 성의원은 검찰권력과 결탁한 부패한 권력의 표상으로 부상한다. 황지성은 부도덕한 부패권력으로부터 부친이 희생된 피해자이며 부친의 복수를 위해 장두칠의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부패한 권력 집단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검사 박희수와 정치인이라는 부정적인 아버지들인 희생양을 소환하고 이들을 처벌하는 서사에 대한 관객의 지지를 얻게된다. <꾼>은 케이퍼 무비에서 부패한 상징적 아버지를 희생양으로 처벌하는 복수극으로 돌변한다. 한 개인에 의한 상징적 아버지의 제거는 스스로 피해자임의 입증과 사적인 복수를 통한 사회적 질서 유지에 대한 무의식적 실천이며 이는 전형적인 한국형 복수 서사로 수렴된다. 

한국형 복수서사에서 부패한 상징적 아버지는 대표적인 희생양이며 이 희생양을 처벌하려는 명분은 사회적 공분이다. 이들의 처벌을 통해 영화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봉합하고 있다. 오이디푸스 서사에서 한국영화는 근친에 대한 사랑보다는 살부에 대한 의지가 압도적으로 강렬하다. 2017년은 촛불 혁명으로 정치적 살부를 감행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냈다. 현실의 장에서는 희생양에 대한 처벌이 법의 이름으로 진행되었다면 한국영화에서는 주인공의 각성과 관객의 사회적 공분을 통한 지지로 상징적 아버지에 대한 처벌을 이미 감행해왔다. 영화는 객석과 스크린의 거리만큼 역사적 시간의 간극을 보이지만 늘 현실을 견인해가고 있다.   
       
  
 
글: 문학산
영화평론가. 한국 독립영화와 동아시아 작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며, 저서로 『한국 단편영화의 이해』와 『한국 독립영화 감독연구』 등이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조회수5,623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