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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연] 사람이 없는 매끄러운 풍경, 원더풀 데이즈 (김문생, 2003)

돌이켜보면 대부분 진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조롱과 저주에 가까웠다. 7년이라는 제작기간 동안 차곡차곡 쌓인 기다림과, 100억이라는 제작비만큼이나 부풀어 오른 설레임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기대는 쉽게 배신감으로 변질되었다. <원더풀 데이즈>는 더 이상 정당한 비평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마치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사람들처럼 비웃음과 욕설이 난무했다. 그나마 평정심을 유지한 사람들은 ‘영상은 좋은데 이야기에서 실패했다’는 논평을 내놓았고 이것은 <원더풀 데이즈>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되었다. 그리고 투자 유치의 어려움이나 제작의 지난한 과정들에 대한 일화들이 후일담처럼 덧붙여졌다.  

  
 
분명 십오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 봐도 <원더풀 데이즈>의 영상은 훌륭하다. 더구나 이천년대 초반의 기술 환경을 염두에 두면 더욱 그렇다. 2D와 3D를 이질감 없이 적절히 결합한 영상이라든가, 미니어쳐의 적극적인 활용은 자연스러운 2D 영상에 깊이와 질감을 더했다. 물론 단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에코반이라는 폐쇄적인 도시 공간의 단조로운 디자인이라든가 축제와 전투 장면에서의 단촐한 군중, 전투 장면에서 소규모 병력 동원으로 인한 밋밋함 등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어느 부분을 재생시키더라도 수려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이야기가 엉성하다는 사실 역시 틀리지 않다. <원더풀 데이즈>의 배경이 되는 에코반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에 인류가 생존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오염물질을 에너지원으로 한다는 기획은 획기적이다. 그런데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오염물질이 고갈되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어떤 것이 다른 조건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법이다. <원더풀 데이즈>는 바로 그러한 시대적 조건을 배경으로 삼는다. 에코반의 지도자들은 에코반의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오히려 오염물질을 만들어낸다. 에코반은 오염물질에 대항해서 만들어졌지만 반대로 오염물질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적대적 공생인 셈이다. 적대적 공생은 시스템 내부의 불안감과 그 불안감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며, 시대적 모순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원더풀 데이즈>에서 이 모순의 복잡한 양상이 지나치게 단순화되며 총독과 부관, 시몬과 수하, 제이라는 성격과 욕망이 모호한 인물들의 갈등으로 축소되어 전개된다. 

그런가 하면 <원더풀 데이즈>는 기본적으로 에코반이라는 인공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내부와 외부로 구분된다. 주인공 수하는 이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인물이다. 그는 마르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나 본래 에코반 출신으로, 에코반 시스템을 파괴하려는 노아박사를 돕고 있다. 에코반에 저항하는 사람이 노아 박사와 수하 뿐만은 아니다. 마르의 레지스탕스들 역시 에코반의 횡포에 저항한다. 그런데 이들은 난장이거나 우둔한 거한, 혹은 그냥 양아치로 묘사된다. 그들은 저항군이라기보다는 폭주족에 더 가깝다. 그들에게는 저항의 논리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묘사는 에코반 내부의 시각, 이를테면 마르인들을 단지 값싼 노동력이나 제공하는 혐오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부관의 시선과 닮아 있다. 그들은 어떤 내적 가치를 지니지 못한채 단순히 도발을 일삼는 위험한 존재들일 뿐이다. 이러한 시선은 수하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는 동생처럼 아끼는 우디가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그들이 담배나 피고 도둑질이나 일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의 저항은 정당하다고 믿는다. 이 우월감은 이야기의 초반 에코반에 침투했다가 귀환한 일회성의 영웅적 행동으로는 정당화되지 못한다. 오히려 하늘이라는 추상을 지향하는 수하에 비해 생존을 위한 마르인들의 저항은 훤씬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들의 절박함을 수하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우월감은 에코반 출신이라는 점 외에는 근거를 마련하기 어려우며, 영화는 시종 에코반의 시각으로 조망된다. 
 
  
 
매끄러운 영상에 비해 엉성한 서사라는 평가는 온당해 보인다. 요컨대 <원더풀 데이즈>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비해 구체적인 욕망을 지닌 다양한 인물들을 현실적으로 형상화 하는 데는 실패하고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빈약한 인물들의 공백은 이미지로 채워진다. 그리고 이미지는 질주하는 바이크라든가 거대한 철제 구조물, 불꽃을 내뿜는 총, 혹은 허공에 튕겨져 나간 총알과 같은 사물에 집중된다. 요컨대 <원더풀 데이즈>에서 영상의 유려함과 서사의 빈약함은 별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과로 묶여 잇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87분짜리 CF라는 조롱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CF에서는 사람조차도 상품으로 진입하는 관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원더풀 데이즈>에서 인물은 이미지로 향하는 진입로 같다. 사람이 없는 풍경 위에서 이미지들만이 떠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이대연
영화평론가. 소설가. 저서로 소설집 『이상한 나라의 뽀로로』(2017), 공저 『영화광의 탄생』(2016)이 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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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조회수6,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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