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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 <메이즈 러너> 3부작 - 미로를 달리는 사람, 황폐해진 도시에서 질주, 죽음의 치료제

 
 

영화의 시작은 굉장히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기에 더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소년의 기억이 완전히 삭제된 채 ‘글레이드’라는 정체 모를 장소로 보내진다. 생필품과 함께 매달 한 명씩 엘리베이터로 배달되듯 올라오는 아이들은 이곳으로 왜 보내졌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 한다. 하루 이틀 지나면 겨우 이름만 기억한 채 ‘글레이드’라 불리는 주거지에서 살아간다. 그곳은 사방이 미로로 둘러싸여 있다. 메이즈(maze) 즉 미로가 열리는 아침이 되면 미로 속으로 달려 들어가 열심히 달려 미로를 파악하고 저녁이 되면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와야 살 수 있다. 미로 속에는 무시무시한 ‘그리버‘라는 괴물이 살고 있다. 


미로는 인생 그 자체이다
   
영화에서 미로 문을 여닫는 장면은 장관이지만, 미로를 푸는 장면과 미로의 복잡함, 구조 변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두뇌 게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메이즈 러너들은 미로의 모형을 완성하면서 이미 출구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희망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러너들은 아침이면 미로로 달려 들어간다. 출구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글레이드의 전체 아이들에게 알려지면 일대 혼란이 올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러너들은 이제 이유도 없이 뛰어야 하는 존재이고, 미로는 여차하면 그리버라는 괴물에게 위협당하는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미로는 문학적 비유로도 종종 사용되고, 신화에도 여러 편 등장한다. 미로에는 어떤 상징성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신화는 이카로스의 날개에 관한 이야기다. 유명한 발명가 다이달로스의 아들로 태어난 이카로스는 아버지와 함께 신의 노여움을 사 미로에 갇힌다. 아버지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밀랍과 깃털을 이용해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카로스에게 너무 높이 날면 태양 때문에 날개의 밀랍이 녹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물보라에 날개가 젖어 무거워져진다는 주의를 준다. 그러나 어리고 젊은 이카로스는 흥분한 나머지 너무 높이 날아올라 날개가 녹아 바다에 추락한다. 인생이라는 미로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법칙을 어기는 일이며, 금기시되는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이카로스의 추락 파울 루벤스, 1636년, 브뤼셀 왕립미술관
이 영화의 제목이 미로를 달리는 사람들(Maze Runners)이 아니라 ‘미로를 달리는 사람’(The maze runner)이라는 사실은 미로의 상징성과 관련이 있다. 메이즈 러너로서의 첫 번째 능력은 미로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인식을 전환하는 것이다. 미로 속 러너들은 3년 동안 미로를 미친 듯이 달렸고, 아무리 달려도 출구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러너들은 출구를 찾기 위해 달린 게 아니다. 그저 글레이드 아이들의 희망을 짓밟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토마스(딜런 오브라이언)가 나타나기 전까지 ‘러너들’은 미로를 빠져날 수 있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 미로 속 그리버가 주는 막연한 불안한 공포를 위안삼아 글레이드에 안주해 체념하며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1편은 러너들이 아니라 바로 한명의 러너에 관한 이야기이다. 안주하려는 아이들을 설득해 이 미로를 뚫고 나가야 한다는 변화를 추동하는 토마스가 바로 <메이즈 러너 The Maze runner>이다. 
   
짧은 우화를 통해 비슷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이다. 저자는 안전하게 느껴지는 미로 속에서 안주하며 살면 될 텐데 도박과 같은 도전을 시도하는 생쥐를 응원한다. 책이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였던 이유도 우리는 대부분 도전보다는 “밖에 나간다고 자유로울 것 같아?”라는 안주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글레이드에 안주하려는 갤리(윌 폴티) 캐릭터 같은 유형이다. 갤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수호하고자 하는 글레이드 내의 2인자로 마냥 악역이라고 볼 수는 없다. 공동체의 룰을 깨고자 하는 토마스의 방식은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갤리에겐 엄청난 불안감으로 다가왔고, 공동체를 괴멸시키는 방법으로 보였다. 그래서 사회에서 더 넘어서기 힘든 벽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반대자일지도 모른다. 
   
더 가혹해진 생존 서사, 서바이벌 게임
 
  
 
1편은 제목 그대로 미로를 달리는 사람들, 움직이는 거대한 미로에 갇힌 아이들이 탈출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영화였다. 2편 <스코치 트라이얼>은 감염되면 좀비가 되는 플레어 바이러스가 점령해 불타버린(Scorch) 황폐한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너들이 더 노력하며(trial) 질주하는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3편은 미로를 탈출했던 러너들이 민호를 구하기 위해 미로를 만든 사악한 존재 위키드(wicked)의 본부가 있는 인류 최후의 도시로 다시 들어가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청소년들의 가혹한 생존서사를 그린 소설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윌리엄 골딩이 1954년에 발표한 『파리대왕』이 있다. 문명세계에 살던 아이들이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고립된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성적인 해결과 사회 관습을 붕괴하고, 공포와 소문에 휩쓸리게 된다.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 아이들은 비열한 폭력으로 두려움을 해결하는 야만상태로 돌아간다. 이 소설은 인간 내면에 잠재한 권력, 힘에 대한 욕망과 사악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전 세계 지성인들이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6백만을 학살했던 비인간적인 인간들의 폭력성과 광기를 설명할 수 있는 소설로 『파리대왕』을 이해했다.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63년 그리고 90년에는 해리 훅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50년이 지나, 10대가 주인공인 베스트셀러는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메이즈러너』 등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영화화되고 있다. 10대 청소년이 주인공인 영 어덜트 소설은 청소년들의 고립과 생존 서사 즉 서바이벌 게임으로 전개된다.  『파리대왕』이 우연한 사고로 아이들이 고립된 거라면, 최근 경향은 잔혹한 게임 규칙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왜 만들었는지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 그 공간에 존재한 아이들은 그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목숨을 건 서바이벌 게임을 즐긴다. 소년들은 미로의 탈출구를 탐구하다 실패하면 벌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잃는다. 학습실패의 대가가 체벌이 아닌 목숨과 바꾸는 상황은 청소년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럼에도 10대들은 서바이벌 게임에 열광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글레이드 안에서 스스로 지켜야 할 규칙도 정한다. 영화<메이즈 러너>에 제시된 기본 규칙 세 가지는 ‘맡은 바 최선을 다하기, 다른 친구들 해치지 않기, 벽 넘어가지 않기’이다. 이유를 묻지도 않고 아침이면 달려 나가 맡은 바 최선을 다하며 궤도에서 탈선하지 않고 달리다 저녁이면 돌아와야 하는 규칙은 우리 청소년들의 규칙과도 유사하다. 
 
  
 
3편의 시리즈 내내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극심한 생존 경쟁에 던져져 죽기 살기로 달려야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 수 있다. 이 무시무시한 세계는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더 잔인해지고 목숨은 더 쉽게 달아난다. 일단 살아남는 게 우선이기에 이런 생존 게임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생각할 틈이 없다. 아이들에게 일정한 궤도를 정해주고 옆도 뒤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달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건 낯설지 않다. 입시와 스펙 쌓기에 시달리는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생존 경쟁에 목메야 하는지 묻거나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 게임에 리셋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 실패하면 죽음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경주마처럼 옆 눈을 가리고 출구를 향해 뛰어야 한다. ‘과연 출구가 있기나 한 건가’하는 의문을 품어서도 안 된다. 그저 실패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감만이 아이들을 채찍질 해댄다. 미로를 만든 ‘위키드’는 계속 속삭인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믿고 달리면 마음은 편하겠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른들이 물어야 할 차례이다. 누가 만든 미로이고, 누가 미로로 아이들을 집어넣었고, 누가 그 일로 혜택을 보는가 하고 말이다. 

글: 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이자 대구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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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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