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아라는 본명보다 미쓰백이라 불리는 것이 더 편한 여자는 누군가 선을 넘어 자신의 인생에 들어오는 것도, 자신이 남의 인생에 들어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 마사지 가게에서 일하고 한겨울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지만 그것은 그저 상아(한지민)의 삶의 모습일 뿐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녀를 자꾸 괴롭히는 것이 있다면,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하고 놀이공원에 버린 엄마에 대한 기억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아가 증오와 원망을 동력으로 생을 이어가고 복수를 계획하는 유형의 인물인 것은 아니다. 그저 살아가고, 또 종종 아파하거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뜨리곤 할 뿐이다. 이제는 서울도 벗어나 제주도로 향할 마음을 먹은 상아가 추운 겨울 얇은 원피스만 입은 채 떨고 있는 지은(김시아)을 만나면서 <미쓰백>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러 정황상 지은이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상아는 지은의 구조요청과도 같은 몸짓 앞에서 여러 차례 망설인다. 누군가 자신의 인생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타인의 인생에 들어가고 책임지기를 꺼리며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아가 지은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 법적이고 제도적인 절차와 상아 자신의 기억으로 인해 상아와 지은의 관계는 종종 가로막힌다. 그러나 빛나는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손을 잡고, 상처를 보듬으며 위로하는 듯한 지은의 손길은 상아로 하여금 외면하거나 망설이기보다 다급하게 행동하는 쪽을 택하게 한다. 집안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한 지은과 그런 지은을 데리고 도망치는 상아는 이제 서로의 버팀목이 된다.
<미쓰백>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는 것들의 영화다. 우선 호칭이 그렇다. 지은이 아줌마 혹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상아를 부르자 상아는 잠시 침묵하더니 “미쓰백”이라고 말한다. 주로 일터에서 주변인물들이 그녀를 부를 때 사용하는 이 말은 구체적이라기보다 일종의 익명적인 호칭에 가깝고 그렇기에 상아는 그 이름 앞에서 그나마 덜 불편해 보인다. 지은에게라면 이 호칭은 우선 부르고 보는 일시적인 이름이거나 어떤 익명적인 존재를 부르는 말이 아니라 정확하고 구체적인 호명이 된다.
이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막 탈출해 상처투성이인 지은을 데리고 병원에 간 상아는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를 써넣어야 하는 곳에 아무 것도 쓸 수 없다. 적어도 법적으로 상아는 지은의 엄마도 그 무엇도 될 수 없지만, 그래서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는 관계이지만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미완성이거나 불완전한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더 나아가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지배적이고 익숙한 언어들로 부를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약하지만 끈질긴 두 사람을 통해 영화 속에서 생생해진다. 영화의 행로는 상아가 그런 것처럼 때로 무모하고 위태롭지만, <미쓰백>은 여성과 아동 캐릭터의 재현이나 관계에 대한 물음과 같이 지금 분명히 필요하고 긴급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 이봄영화제
상영 : 2018년 11월 20일 (화) 오후 7시 영화 상영 및 해설
장소 : 이봄씨어터 (신사역 가로수길)
문의 : 070-8233-4321
글 : 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