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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부족한 서사와 넘치는 액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황정민과 이정재 주연의 하드보일드 상업영화이다.

예고편에서 보여준 황정민의 '인남'과 이정재의 '레이'의 대립구도는 영화의 기대감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졌고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움이 남았다.

             

(스포일러 포함)


부족한 서사와 설정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주인공 인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정재의 레이와 박정민의 유이 또한 주연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사실상 황정민의 인남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서사와 설정은 너무나 부실하다.

서사는 108분의 상영시간동안 아무런 존재를 내비춰 주지 못한다.

억지스러운 개연성과 진부한 서사는 마치 관객들에게 오히려 '신경쓰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은 서사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다.

구태여 인남의 과거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레이는 자신의 어린시절 일대기를 주절주절 읊조린다.

필요한 설정이었지만 영화속 다른 설정들과 전혀 어우러지지 못한다.

어린 여자아이의 유괴는 이제는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이며, 그를 구하는 주인공의 무뚝뚝한 모습은

'맨온파이어'와 '아저씨'를 연상시킨다.

신세계 느낌의 황해를 보러 갔는데 존윅을 보고온 기분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서사는 황해의 모호함과 불편함은 없었을 뿐더러 신세계처럼 명확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존윅처럼 완전히 포기하지도 못했다.

 

표현과 상징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표현과 상징은 흔히 보이는 단순한 킬링타임용 상업영화를 넘어선다.

관습적인 표현과 상징이 다소 있지만, 이마저도 무시해버리는 영화들이 즐비한 한국영화에서

감독의 연출이 돋보였다.

술과 아메리카노

영화에서 술과 아메리카노는 각각 인남과 레이를 상징하는 역할을 한다.

딸을 구하기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인남의 모습을 술의 뜨거운 이미지로,

레이의 냉혈한 추격자의 모습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차가운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 초반 인남의 모습은 언제나 술과 함께한다.

고레다를 죽인 후 술을 마시고, 청부살인 의뢰인을 만나며 술을 마신다.

그리고 파나마 그림을 보며 술을 마시며 일식당에서 파나마 책자를 보면서도 옆에 술병이 있다.

반면 레이의 등장, 감독은 레이가 청부살인 의뢰인을 죽이는 장면에서 레이의 모습보다 손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먼저 클로즈업해준다. 그리고 보이는 레이의 파란 슈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태국에서 길거리 깡패들과 싸우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하며

감독은 이들을 처치하고 얼음으로 세수를 하는 레이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그의 차가운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뜨거운 인남과 차가운 레이의 이미지는 그들의 첫 조우를 기준으로 변화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남의 이미지에 레이가 흡수되는 느낌을 받게한다.

인남과의 첫 싸움 후 레이는 숙소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커다란 술병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이 등장한다.

형을 죽인 인남에게 복수하기 위한 그의 냉혈한 모습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차갑고 이성적이던 그의 추격은 다분히 감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는 레이의 표정에서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영화 초반 레이의 얼굴에는 인남과의 조우를 기점으로 '분노'라는 감정이 드러나게 된다.

'왜 그(인남)를 그렇게 죽이고 싶어하지?'라는 차오포의 물음에

'나도 모르겠다. 이유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아'라며 답한다.

형의 복수라는 이성적인 이유는 사라지고 인남을 죽이겠다는 감정만 남은 것이다.

처음부터 형 고레다는 레이에게 감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형제라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감정적 유대가

등장하지 않았을 뿐더러 야쿠자 세계에서도 그들의 관계는 극소수만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의 죽음은 레이에게 또다른 살인을 위한 단순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반면 인남은 영화 전반적으로 이성적인 모습보다는 오직 딸만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뜨거운 아빠의 모습으로

관객에게 기억된다.

수류탄이 터지고 차가 공중에서 뒹구는 와중에도 딸이 들어있는 캐리어를 감싸는 희생적인 아빠의 모습에서

관객은 다시 한번 인남의 처절한 부성애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레이가 끝까지 '냉혈한 추격자'의 이미지로 남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황정민과 이정재라는 S급의 배우를 캐스팅하면서 이정재 배우의 레이가 조연같은 주연에 머무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두 캐릭터의 보다 명확하고 질긴 인연과 사투를 그렸더라면 보다 인상적인 캐릭터들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동전

 

동전은 딸이 엄마와의 소중한 경험을 기억하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동전 마술은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모습을 표현함과 동시에 유괴당한 딸의 유일한 희망으로서 상징된다.

또한 아룬시아 호텔에서 인남이 딸에게 보여주는 동전마술은 딸이 인남을 '아빠'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빛과 어둠

 

영화에서 빛과 어둠을 이용한 표현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제목을 충실히 표현한다.

영화 속 빛과 어둠을 이용한 표현은 수시로 등장하지만 가장 중요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일식집 주방장

영화의 초반부 고레다를 죽인 인남은 청부살인 의뢰인과 한 일식당에서 만나게 된다.

인남은 맥주를 주문하여 자신의 술과 섞은 후 마시게 되고 이어서 주방장의 모습이 비춰진다.

이 때 어두운 주방속의 주방장은 술잔을 손에 든채 밝은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보고있다.

이는 비참하고 어두운 현실에서 한 줄기 세어나오는 빛을 바라보는 인남의 모습을 투영한다.

납치된 딸을 구해야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직 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인남의 모습이기도 하다.

2. 방콕의 골목길

성공적으로 딸을 구출한 인남은 한 가게에서 딸에게 옷과 인형을 사준다.

이 후 어두운 골목길에서 밝은 빛을 따라나가는 두 부녀의 모습은 어두운 현실에서 희망을 찾아나가는

그들의 모습을 표현해준다.

3. 침대 아래의 동전

아룬시아 호텔에서 인남은 동전을 줍기 위해 침대 아래로 들어간 딸을 끌어낸다.

어두운 침대 아래로 희망의 동전을 찾아간 딸을 밝은 방으로 다시 데려오는 장면은

영화속 빛과 어둠의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지갑

 

영주가 남긴 지갑은 유일한 유품이며 인남에게 딸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의 추격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그렇지만 인남이 지갑을 열어보는 장면에서 지갑의 표현이 다소 아쉬웠다.

분명 부둣가에서 발견된 시신에서 나온 지갑인데, 너무 깨끗하다. 누가봐도 새지갑의 모습이었다.

더불어 브랜드 또한 샤넬이라는 명품을 사용함으로서 시선이 집중된다.

착잡한 마음으로 지갑을 열어보는 인남의 표정이 주목받아야 하는 장면이었지만 이러한 설정들로 인하여

인남의 모습은 완전히 묻혀버린 느낌이었다.

명품 새지갑이아닌 낡고 흙묻은 지갑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었더라면 영주가 겪은 고통을

보다 가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넘치는 액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액션은 빠르고 빈틈이 없다.

한번 시작되면 엄청난 몰입감을 자아내며 영화를 보러간 관객들에게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중간중간 사용된 슬로우 모션은 배우의 표정을 순간적으로 보여줘 장면에 긴장감을 더한다.

화려하고 커다란 효과음에서는 마치 눈앞에서 액션이 펼쳐지는 듯한 입체감이 전해진다.

그렇지만 참신함을 가지지 못했다. 영화를 상징할만한 인상깊고 독창적인 액션은 보이지 않는다.

영화 신세계의 '엘리베이터 액션'이나 설국열차의 '도끼 액션'과 같은 느낌을 주지 못했다.

화려하지만 상투적인 액션의 연속이다.

하지만 인남의 엘리베이터 액션은 신세계의 명장면을 오마주하며 관객들에게 작은 반가움을 주었다.


유이, 존재하면 안되었지만 가장 필요했던 캐릭터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인남과 레이의 캐릭터 뿐만 아니라 유이라는 캐릭터에게 찬사를 보낼 것이다.

다소 뻔하고 상투적이었던 인남과 레이와는 달리 유이는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어두운 두 주인공 사이에서 유일하게 웃음 포인트를 제공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조율한다.

유이를 연기한 박정민 배우의 연기 또한 대단했다.

영화에서 유이의 역활이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하여야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모습이었다.

이렇듯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유이라는 캐릭터를 통하여 영화의 입체감은 한층 끌어올린다.

그렇지만 '추격자'와 '황해'같은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유이는 불필요한 캐릭터로 다가온다.

'하드보일드'라는 거친 장르를 표방한 영화속 유이의 캐릭터는 오히려 분위기를 해치는 역할을 한다.

남자 냄새 가득한 영화에서 여성스러운 캐릭터, 재미있는 캐릭터는 때로는 방해되며 불편하게 느껴진다.

황정민 배우와 이정재 배우의 거친 연기에 몰입하고 취해있다가도 유이가 등장하면 분위기가 반전된다.

즉 유이는 거친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게 통일성을 저해하며 존재하면 않되었던 캐릭터임과 동시에

영화의 부족한 서사를 잊게 만들어주는 가장 필요하고 중요했던 캐릭터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악'인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전반적으로 인남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딸을 구하기 위한 인남의 처절함이 느껴진다.

그렇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절대 악'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인남조차도 결국에는 청부살인업자에 불과하며 딸을 구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가 저지르는 숱한 악행들은 누군가에 있어서는 악으로서 인식될 것이다.

악이라는 것은 언제나 큰 시련으로 다가오게 되고 극복의 대상이며 상대적으로 나타난다.

영화에 절대 악의 모습과 같이 등장하는 차오포에게 조차 인남은 자신이 구축한 세계의 질서를

뒤흔드는 악인 것이다.

인남에게 악은 '레이'와 '차오포'로 등장한다. 딸을 유괴한 차오포와 자신을 쫒는 레이는

그에게 반드시 벗어나야하는 악으로서 존재한다.

레이에게 악은 '인남'. 인남은 레이에게 형을 죽인 주범이며 끝없는 추격의 명분을 제공한다.

유이의 악은 '사회'이다. 성소수자인 유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한국 사회로부터 도망치게 된다.

그렇지만 도착한 태국에서 유이는 아동 매매가 자행되는 현실을 마주한뒤

다시 한번 사회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파나마로 가게된다.

영화는 주인공들에게 그들만의 악을 부여하며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벗어나는 거친 사투를 그렸다.

그렇다면 영화 초반 고레다의 장례식에서 보였던 동심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감독은 끝나지 않는 악의 굴레를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북파 공작원이며 사회의 필요악이었던 인남의 추방으로 부터 시작된 악의 순환.

이러한 순환은 가족의 참담한 비극으로 이어져 자신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레이의 이야기 또한 아버지의 추방으로 인하여 시작되었다.

영화에서 추격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어두운 수단임과 동시에 악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주인공들의 밝은 빛이다. 언제나 가려질 수 밖에 없는 동전의 이면이다.

 

 

결말, 그리고 구원

영화는 신파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누구나 예측 가능한 결말로 막이 내린다.

과한 감정이입이 없이 각각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맡을 역할을 보여주며 깔끔하게 영화는 끝나게 된다.

결국 자신들을 둘러싼 악으로부터 구원받은 이는 누구일까.

파나마는 이들의 안식처가 될 수없다. 끝없는 악의 굴레와 순환에서 현실은 또다른 악의 발원지일 뿐이다.

'이렇게 될거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잖아'.

피와 상처로 얼룩진 비참한 삶.

어쩌면 지옥같은 현실로 부터 해방된 인남과 레이야말로 진정으로 구원받은 존재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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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김명수

등록일2020-08-13

조회수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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