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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파리 - 강유정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
샤갈•피카소 등 예술가와 조우
첫 장면만으로도 넋을 잃을 만하다. 우리가 파리 여행에 대해 꿈꾸는 장소, 공기, 그 느낌들이 알뜰하게 차 있으니 말이다. 소박한 여행 사진들 같지만 그 질감을 전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여행이 정말 좋았어라는 열마디 말보다, 이 영상들이 더 강력하다. 말하자면, 이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에 보내는 우디 앨런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어떤 대상을 애틋하게 그려낸다면 그건 사랑고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디 앨런은 사실 뉴욕의 상징이었다. 그의 영화들은 대개 뉴욕의 예술사회 내부로 비집고 들어가 흔들고 뒤엎곤 했으니까 말이다. 영화뿐이 아니다. 그의 삶도 뉴욕 사교계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그래서였을까? 우디 앨런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 뉴욕을 떠나 유럽으로 영화적 배경을 옮겼다. 스캔들의 중심 자리가 쉽진 않았을 듯하다.

  •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우디 앨런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이미지를 우아한 영화적 문법으로 잡아낸다. 영국에서 찍었던 영화 ‘스쿠프’, ‘매치 포인트’, ‘환상의 그대’만 해도 그렇다. 즉흥적인 요설체가 가득했던 우디 앨런 스타일과 달리 이 영화들 속에는 플롯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오마주처럼 영국 이야기엔 고전적 비장미와 아이러니가 가득하다. 아예, ‘환상의 그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말하자면 우디 앨런은 그가 머무는 도시를 영화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그 사랑과 존경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 예찬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목에서부터 암시되어 있듯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은 곧 파리다. 작가 길은 결혼을 앞둔 약혼녀와 함께 파리를 찾는다. 그는 우디 앨런 영화에 나왔던 여느 남자 주인공과 닮아 있다. 예술가이면서 수선스럽고 나르시시즘과 신경 쇠약이 지나쳐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믿지 않는다. 길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지만 파리에 도착하니 약혼녀와 차이점만 부각되기 시작한다. 아네즈는 전형적 미국 관광객처럼 대표적 명소와 예술작품을 훑고 싶다. 그런데 길은 좀 다르다. 그는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카페나 파블로 피카소가 걸었던 거리, 파리의 뒷골목이 궁금하다. 아네즈와 길의 파리 방문 목적은 아예 다르다. 아네즈는 단순 관광객이지만 길은 파리를 스쳐간 예술가들의 영감을 수혈받고 싶은 것이다.

    그때 길 앞에 자정의 종소리와 함께 1920년대 스타일의 푸조 차량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푸조차량은 길이 그렇게도 꿈꾸던 1920년대 파리로 데려다주는 시간 여행 차량이다. 차에서 내리자 같은 파리지만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길은 그 시간대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샤갈, 파블로 피카소에 이르는 수 많은 예술가들, 골든 에이지를 장식했던 그 예술과들을 만난다. 파블로 피카소가 아드리아나를 그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자신의 소설을 첨삭받는다. 와우! 사실, 이건 모든 예술가들의 꿈 아닐까?

    그러니까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디 앨런과 같은 예술가라면 한번쯤 꿈꾸었을 환상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낮의 현실은 싫증나고 밤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진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과거를 그리워한다. 노스탤지어라고 불리는 이 향수의 감정은 역사가 된 시간, 자신의 선택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언제나 지금 여기의 삶보다는 ‘그곳’이 더 나았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는 것이다.

    골든 에이지를 살았던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만만치 않다. 마리온 코티아르, 애드리안 브로디, 캐시 베이츠가 예술사의 거장 역할을 해낸다. 관객들에겐 즐거움이 두 가지인 셈이다. 역사 속 거장의 이름을 만나는 환상과 영화계의 별들이 그들인 척 모여드는 즐거움 말이다. 우디 앨런이 만든 예술가 갈라쇼가 바로 ‘미드나잇 인 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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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2-07-31

조회수7,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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