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
샤갈•피카소 등 예술가와 조우
샤갈•피카소 등 예술가와 조우
우디 앨런은 사실 뉴욕의 상징이었다. 그의 영화들은 대개 뉴욕의 예술인 사회 내부로 비집고 들어가 흔들고 뒤엎곤 했으니까 말이다. 영화뿐이 아니다. 그의 삶도 뉴욕 사교계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다. 그래서였을까? 우디 앨런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 뉴욕을 떠나 유럽으로 영화적 배경을 옮겼다. 스캔들의 중심 자리가 쉽진 않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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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 예찬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목에서부터 암시되어 있듯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은 곧 파리다. 작가 길은 결혼을 앞둔 약혼녀와 함께 파리를 찾는다. 그는 우디 앨런 영화에 나왔던 여느 남자 주인공과 닮아 있다. 예술가이면서 수선스럽고 나르시시즘과 신경 쇠약이 지나쳐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를 믿지 않는다. 길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지만 파리에 도착하니 약혼녀와 차이점만 부각되기 시작한다. 아네즈는 전형적 미국 관광객처럼 대표적 명소와 예술작품을 훑고 싶다. 그런데 길은 좀 다르다. 그는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카페나 파블로 피카소가 걸었던 거리, 파리의 뒷골목이 궁금하다. 아네즈와 길의 파리 방문 목적은 아예 다르다. 아네즈는 단순 관광객이지만 길은 파리를 스쳐간 예술가들의 영감을 수혈받고 싶은 것이다.
그때 길 앞에 자정의 종소리와 함께 1920년대 스타일의 푸조 차량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푸조차량은 길이 그렇게도 꿈꾸던 1920년대 파리로 데려다주는 시간 여행 차량이다. 차에서 내리자 같은 파리지만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길은 그 시간대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드 스타인, 샤갈, 파블로 피카소에 이르는 수 많은 예술가들, 골든 에이지를 장식했던 그 예술과들을 만난다. 파블로 피카소가 아드리아나를 그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자신의 소설을 첨삭받는다. 와우! 사실, 이건 모든 예술가들의 꿈 아닐까?
그러니까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디 앨런과 같은 예술가라면 한번쯤 꿈꾸었을 환상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낮의 현실은 싫증나고 밤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진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과거를 그리워한다. 노스탤지어라고 불리는 이 향수의 감정은 역사가 된 시간, 자신의 선택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기도 하다. 언제나 지금 여기의 삶보다는 ‘그곳’이 더 나았을 것이라 지레 짐작하는 것이다.
골든 에이지를 살았던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도 만만치 않다. 마리온 코티아르, 애드리안 브로디, 캐시 베이츠가 예술사의 거장 역할을 해낸다. 관객들에겐 즐거움이 두 가지인 셈이다. 역사 속 거장의 이름을 만나는 환상과 영화계의 별들이 그들인 척 모여드는 즐거움 말이다. 우디 앨런이 만든 예술가 갈라쇼가 바로 ‘미드나잇 인 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