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공주>의 화살은 누굴 겨냥했는가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요?” 여고생 ‘한공주’가 이 영화의 첫 씬에서 어렵게 입을 땝니다. 무척이나 위축된 모습입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위축 되었을까요. 탄원서를 들고 와 서명을 강요하는 가해자들의 부모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어쩌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또 다른 이유 때문일까요.
영화 <한공주>는 잘 알려졌다시피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입니다. 밀양 지역에 거주하던 남고생이 자신의 일진 동료들과 함께 울산에 거주하는 한 자매와 그녀들의 고종사촌까지 집단 성폭행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 자체로도 충격적이거니와 피해자에 관한 배려 없는 수사와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놓았다.”고 피해자에게 폭언을 한 밀양 경찰 측의 태도도 더불어 이슈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2004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한공주>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표면에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다시금 밀양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가해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들은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소위 ‘인간의 탈을 쓴 짐승’과 같은 짓을 한 자들이니까요. 다시는 용서 받지 못할 일을 한 그들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겨누고 있는 화살은 그들만을 위한 것일까요.
다시 영화로 넘어가서 애기 해 봅시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한 시점입니다. 주인공인 ‘한공주’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 사건 뒤에 전학을 가게 되었구요. ‘한공주’와 그녀의 전 학교 교사가 식사 중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관객들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남겼을만한 대사가 나옵니다. “공주야, 너 잘못 안 한거 다 알아. 근데 그게 아니야. 잘잘못은 법원 가서 따지는 거고. 사람 사는 세상에 뭐 잘못했다고 죄인이고 그렇지 않았다고 죄인이 아닌 것도 아니야. 알려져서 좋을 게 없잖아. 지금 다 일 조용히 처리하고 있어.” 그리고 공허한 눈빛으로 교사를 바라보기만 하는 ‘한공주’의 눈빛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계속 음울한 분위기로 일관되지는 않습니다. 전학 절차를 마친 뒤에 ‘한공주’는 교사의 집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처음에는 그녀에 대해 우호적이지 못하지만 갈수록 그녀를 딸처럼 대해주는 교사의 어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전학을 간 학교에서도 좋은 인연이 생깁니다. 자신에게 쌀쌀맞게 구는데도 늘 그녀 옆에 있어주는 친구 ‘은희’를 만났기 때문이죠. 가슴이 훈훈해지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는 잔인하게 짓밟힌 한 소녀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그러니까, 우리가 언젠가 본거 같은 그런 성장 드라마인 것일까요. 하지만 이 영화가 한 소녀의 성장과 극복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공주’가 ‘은희’와 친구들에게 크게 화를 낸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녀는 미안한 감정을 느껴서 였는지 ‘은희’에게 줄 사과 쪽지를 끄적거리고 있습니다. 아니, 그녀가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보려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교실에 물 밀 듯이 들어와 탄원서를 쓰라고 강요하는 가해자들의 부모가 그 찰나의 순간을 앗아갑니다. 그렇게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교사의 어머니도, ‘은희’도, 그녀의 친구들도 스스로 떠나려는 그녀를 잡지 않습니다. 모른 척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산산히 부서져 갔습니다. 그녀가 떠나는 순간에도 그녀를 붙잡고 탄원서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파출소장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과를 받는데요, 저는 왜 도망가요?”
이 영화는 무서울 정도로 차갑습니다. 관객들에게 그녀를 동정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습니다. 스크린에는 끔찍한 일을 당하고 난,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그 일에 대해 무감각해진 무표정한 그녀가 나오고 있을 뿐입니다. 그녀의 주위 사람들도 모두 별거 아니라는 듯 묻어 넘기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더 마음이 아프고 또 슬픕니다. 왜 그렇게도 슬플까요. 세상에서 소외된 그녀의 모습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녀를 소외시킨 그들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요. 밀양 성폭행 사건은 연루자 100명중 3명만 미약한 실형 선고를 받고 나머지 가해자에 대해서는 훈방조치를 하거나 더 이상 수사가 진행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힘없는 자들에게 왜 이다지도 잔인한지. 그것이 영화의 끝자락에서 혼자 짐가방을 끌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황영미 영화 평론가는 이 영화의 연출자 이수진 감독에 대해 "철저하게 이기적인 우리 사회, 무관심한 우리들에게 반성의 화살을 쏜 작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이 영화에 의미에 관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달라져야 합니다. 영화 안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스크린 밖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글의 흐름과 관계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맘에 들었던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을 남겨두고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영화로 보내는 간절한 응원, 이 미친 세상에서-
이 한 줄이 가지고 있는 내용처럼 <한공주>가 어딘가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그들에게 간절한 응원이 되길.
2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