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희(영화평론가)
<혜화, 동>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영화다. 청소년의 풋사랑을 다루되 그것을 낭만적인 것으로 과장하지 않고, 미혼모의 이야기를 다루되 그것을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하지 않는다. 다만 열여덟 살의, 진실하지만 미숙한 사랑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의 빛나는 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영화는 과거의 문제를 이제 스물네 살이 된 그들의 현재로 가져온다. 이를 통해 상처는 결코 깨끗이 도려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죄책감은 그 원인을 외면하는 한 결코 치유되지 않는 것임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러준다. 그 목소리는 가슴을 파고들어 먹먹하게 할 만큼 호소력이 크지만, 동시에 너무나 차분해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적 동요를 눈물로 분출하게 두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긴 여운을 남기는 뻐근한 아픔으로 가슴에 새겨진다.
고등학생인 한수(유인석)와 동갑내기 혜화(유다인)는 서로 사랑한다. 혜화는 임신을 하게 되고 한수와 결혼하려고 한다. 그러나 혜화에 비해 여러모로 유복한 한수네 집에서는 아들을 혜화와 떼어놓는다. 어리고 여렸던 한수가 부모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떠나버리자, 혜화는 혼자 남아 두려움에 벌벌 떨며 아기를 낳는다. 그리고 그 아기는 낳자마자 입양시키기로 양가 어머니들에 의해 합의된다.
그로부터 6년 후 혜화는 가축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버려진 개들을 데려다 키우고 홀아비 수의사(박혁권)의 어린 아들을 돌보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 그녀 앞에 한수가 다리를 저는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의 아이’를 찾자고 말한다. 6년 전 말없이 떠났던 한수에 대한 원망이 깊었던 혜화는 처음에는 그 말을 들은 체 만 체 한다. 그러나 한수는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아기를 찾아다니고, 아기에 대한 정보를 혜화에게 전해준다. 혜화는 점차 마음이 흔들리게 되고 한수가 ‘우리의 딸’이라고 하는 ‘나연이’와 하룻밤을 보내기에 이른다.
결국 모든 것은 한수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한수를 혜화와 떼어놓음으로써 새 삶을 살게 하려던 한수 부모의 뜻과는 달리 한수는 혜화를 떠난 이후 폐인이 되어왔음이 드러난다. 다리를 저는 그의 외양은 그러한 그의 처지를 상징한다. 또한 그것은 그가 유약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도 혜화와 아기만은 진실로 사랑했다는 증거가 된다. 혜화와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는 치유되기 힘든 상황에 6년간이나 봉착해 있었던 것이다.
한수로 분한 유인석은 18살에 고착된 유약한 청년의 모습을 절실하게 보여준다. 유다인의 야무진 연기와 그 자체로서 충분히 가슴을 저리게 하는 유인석의 눈빛은, 과거를 단지 현재를 위한 통과의례로만 치워버리지 않는 이 영화의 결말에 강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 영화는 근년 들어 가장 새로우면서도 감동적인 성장영화라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