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감독의 『오빠생각』
전장에 울려 퍼진 감동의 합창
『오빠생각』은 한국전쟁 시, 선린 보육원 어린이합창단 실화를 엮은 영화이다. 고아가 된 남매의 가족사에 전쟁이 커다랗게 자리 잡고, 좌우의 이념 대립이 남긴 상처가 합창으로 치유된다. 전쟁의 포성에서 종식으로 이르는 과정은 감독의 의도적 아날로그적 연출로 그 시대에 걸맞은 흐름을 견지한다. 감독은 사실감 있는 다양한 영화적 장치들로 시대를 재현해 낸다.
영화에 달라붙는 ‘작은 노래가 만든 위대한 기적’, ‘새해 첫 감동대작’이란 광고 문구는 거짓이 아니었다. 영화는 진지하고, 암울한 시대의 아픔을 낭만적 터치로 잘 전개시키면서, 상업성이 부각된 연기자들을 배제하고 참신한 주인공과 아역배우들이 화려하게 연기 공간을 채워나간다. 영화는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123분)에도 불구하고 집중과 몰입을 가져온다.
영화는 흑백필름의 뉴스트랙으로 시대상을 훑어 나간다. 채색으로 바뀌면서 정석으로 풀어나간 드라마는 “전쟁이 일어났고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라는 한상렬 소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백병전까지 치루는 치열한 전투에서 소년인민군의 존재는 전쟁의 허무를 끄집어내고, 남매의 ‘생존의 전쟁’은 추억이 된다.
찔레꽃 활짝 핀 여름날, 나무숲의 초록 울음을 피의 제전으로 만든 채, 6·25에 착지된 산골마을엔 모범정답처럼 쏠림과 쓸림의 좌우의 이념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익숙한 설정, 낮밤이 바뀜에 따라 태극기와 인공기를 번갈아 흔들어야 했고, 인민재판과 인민군가가 난무했던 시절, 그 기억의 언저리에서 피어오르는 또렷한 기억, 풍경의 서정은 눈물로 흐른다.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인간의 굴레, 그 가운데 불균질은 죽음을 몰아온다. 감독은 남매의 가족사와 한상렬 소위(임시완)의 과거사를 영화의 앞에 두고, 전입신고를 기점으로 눈물겨운 합창단 스토리 구축과 활동상, 전쟁 이면의 얼룩진 과거를 실타래 풀 듯 풀어나간다. 전쟁쪽 남성성과 합창 쪽 여성성을 접목, 영화는 낭만의 균형추를 맞추어 나간다.
음악전공 장교가 마주친 전쟁의 참혹함, 천성적으로 해맑은 심성의 그가 버려진 아이들을 사랑할 것은 자명하다. 현란한 대사의 모방, 각본이 만든 울림은 “오빠야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 다카데. ‘ 등의 대사를 낳는다. 영화화된 『오빠생각』은 시를 소설로 확장시킨 느낌을 준다. 틈새에 전쟁고아 십만, 포로수용소, 군수물자의 유출과 같은 사회상이 가볍게 자리 잡는다.
합창단의 연습 장면은 영화의 절반이 지나야 보인다. 아이들 사이의 질시를 본 지휘자 한 소위는 ‘합창은 서로 다른 음을 배려하여 화음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멋진 화음을 만드는 의미 있는 싸움’을 하도록 지침을 내린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니 보이’,’애니 로리‘,’즐거운 나의 집‘,’고향의 봄‘ 등은 영화가 지향하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영화임을 밝히고 있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로 잔잔한 이야기꾼의 재능을 인정받은 이 한 감독은 관객들을 신파와 향수에 물들게 만든다. 전쟁으로 가족과 부대원을 모두 잃은 한상렬 소위를 영화의 축으로 삼음으로써 드라마 ‘미생’ 연기의 진지함과 순수의 감정의 고리를 연결시킨다. 감독에게 동요 ‘오빠생각’은 전쟁, 가족, 향수를 모두 떠올리게 하는 녹색 화두였다.
순수와 열정의 또 다른 한 축, 고아성은 『괴물』 『여행자』, 『설국열차』, 『우아한 거짓말』, 『오피스』에 이르는 10여년의 과정에서 순수와 광기에 걸친 다양한 연기를 보여 주어왔다. 고아성이 『오빠생각』에서 맡은 자원봉사자 박주미 선생은 포근한 모성적 이미지로 상처를 감싸는 역할이다. 이제는 찾기 힘든 시대를 대표하는 전형적 여성, 누나, 선생님의 이미지이다.
『오빠생각』에는 큼직한 전쟁 말고도 인간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숱한 소부대 전투가 깔려있다. 악역을 감행하는 빈민촌 대장 갈고리(이희준)가 있었기에 영화가 추구하는 순수성이 빛나 보였고, 천연덕스런 연기로 오빠 동구(정준원)와 여동생 순이(이레)역을 해낸 남매는 약간의 과장과 억지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부각시켰다.
전선을 이동하며, 아름다운 화음을 선사했던 합창단, 억새풀을 헤치며, 인민군과의 교전을 목격했던 어린이 합창단, 그들은 전쟁이 끝나고 연주회를 갖는다. ‘고향의 봄’은 다시 평온을 되찾은 살아남은 자들의 천상의 목소리였다. 영화를 보는 잣대는 모두 다르다. 향수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은 감독이 감정선을 자극하는 흐름에 취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장석용(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역임, 한국예술평론가협회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