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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 <더 킬러>와 <킬러의 보디가드> ― 킬러영화의 쾌락과 아이러니

로버트 맥기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진정한 선택은 딜레마에서 내리는 선택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생명을 담보로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의 딜레마와 갈등이 잘 드러나는 두 편의 개봉예정작 킬러영화는 극적 쾌락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레이몬 테르멘스 감독의 <더 킬러 The Evil That Men Do>(2015, 스페인)는 어린 소녀로 인해 변모하는 킬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뤽 베송 감독의 <레옹>(1994)을 떠올리게 한다. 패트릭 휴즈 감독의 <킬러의 보디가드 The Hitman's Bodyguard>(2017, 미국)는 숙적인 보디가드와 킬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월터 힐 감독의 <48시간>(1982)을 연상시킨다.

아이러니는 변장의 의미를 담고 있고 겉으로 드러난 것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아이러니의 종류에는 성격의 아이러니(심리적 양면성), 극적인 아이러니(인지와 무지의 대비), 순진의 아이러니(무지하고 순진한 인물이 삶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반전), 상황의 아이러니(사건의 갑작스러운 반전), 부조화의 아이러니(모순된 진술이나 부조화한 이미지 병치) 등이 있다. 두 킬러영화는 인물의 변화와 딜레마에서의 선택을 통해 다양한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더 킬러>는 어린 소녀를 살해하라는 보스의 명령을 받은 킬러의 갈등을 그린 영화이다. 산티아고와 베니는 후원자로 불리는 보스 루초를 위해 조직에서 배달해오는 사람들을 죽이는 킬러이다. 어느 날 루초의 조카 마틴이 라이벌 조직 보스 몬테로의 딸인 10살짜리 소녀 마리나를 배달해 온다. 루초는 자신의 아들을 납치해간 라이벌 조직에 대한 복수로 마리나를 죽이고자 한다. 산티아고와 베니는 보스의 복수를 이행할 것인지 무고한 어린 소녀를 살릴 것인지 기로에 놓이게 된다. 

  

산티아고는 별명 ‘미친놈’에 걸맞게 잔인하게 인간을 죽이지만 개는 못 죽인다는 점에서 성격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는 애인 린이 임신하여 자신의 아기를 갖게 되자 자신은 아버지감이 못 된다면서 아기를 지우라고 말한다. 인질로 잡혀 온 마리나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해 온 그는 자신의 아기로 인해 흔들리게 된다. 산티아고의 심경의 변화로 인해 신이라고 떠받들던 보스 루초는 조력자에서 적대자로 변모하게 되어 상황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전도유망한 당뇨병 의사였던 베니는 환자를 죽이는 사고를 저질렀으나 루초가 도와줌으로써 그의 밑에서 킬러가 된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인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됨으로써 극적인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된다. 그는 이혼한 전처에게 자식을 뺏겨 오랫동안 보지 못해 마리나를 보고 동요하게 된다. 

  

마리나는 채식주의자라며 채소 요리를 요구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며 베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자기를 절대 해치지 않을 거라며 되풀이하여 말함으로써 베니와 산티아고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마리나는 자신의 아버지가 수백 명의 사람들을 죽인 범죄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킬러들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 거라는 실현 불가능한 소망을 믿음으로써 순진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장르영화에 대해 능통한 관객은 마리나가 결국 살아서 탈출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연 누가 살고 누가 죽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진실에 대한 무지/인지의 대비를 통한 극적인 아이러니, 그리고 채소, 아이스크림 등의 이미지를 통한 순진의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더 킬러>는 이러한 아이러니와 갈등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킬러의 보디가드>는 보디가드가 숙적 킬러의 경호를 맡아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트리플 A급 보디가드였던 마이클 브라이스는 의뢰인인 일본 무기상 구로사와의 죽음 이후 A급으로 추락하고 연인 아멜리아 루셀과도 이별하게 된다. 어느 날 마이클은 루셀로부터 독재자 듀코비치에 대해 증언을 할 일급 킬러 다리우스 킨케이드의 경호를 부탁받는다. 킨케이드를 영국에서 네덜란드 국제사법재판소까지 데려다주는 길은 숙적관계인 두 사람의 갈등과 듀코비치 부하들의 추격 등으로 험난하기만 하다. 

  

킨케이드는 잔인한 킬러이면서 동시에 로맨티스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성격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마이클/킨케이드는 보디가드/킬러, 지키기/죽이기, 백인/흑인, 미혼/기혼 등 상반된 입장과 대조적인 성격을 통해 부조화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를 훔칠 때 마이클은 도구를 꺼내는 반면 킨케이드는 바로 유리창을 깨뜨려 버린다. 

  

듀코비치의 부하 세 명이 나타나자 킨케이드는 마이클에게 ‘하나, 둘, 셋!’을 헤아리고 나서 각자 한 명씩 맡고 먼저 처치한 사람이 나머지 한 명을 처치하자라고 말하지만, 곧바로 자신이 세 명을 모두 해치워 버린다. 

  

 

  

킨케이드가 마이클의 포드 자동차에서 엉덩이 냄새가 난다고 놀리는 장면, 나란히 주차되어 있는 재규어와 포드를 바라보며 재규어는 냄새가 나더라도 슈퍼모델 엉덩이라며 빗대는 장면 등에서 여성 이미지와 연결하여 포드/재규어를 대비시키고 있다. 듀코비치의 부하들의 총격으로 난장판인 거리 한복판에서 마이클은 진열대 밑에 숨어 있는 가게 주인에게 킨케이드에 대한 불평을 계속 털어놓는다. 이렇듯 인물의 상반된 입장과 성격, 말과 행동의 불일치, 자동차를 이용한 성적 농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의 행동 등으로 부조화의 아이러니를 통해 웃음을 창출한다. 

  

 

  

보디가드로서의 마이클의 신조인 “따분한 게 최고다!”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의뢰인인 일본인 무기상 구로사와가 총을 맞아 죽는 등 계속해서 사건이 터지는 반전을 보여준다. 트리플A급 보디가드로서 재규어 차, 고급 정장, 말끔한 얼굴, VIP 고객, 선글라스 등은 구로사와의 죽음 이후 A급으로 전락하여 포드 차, 허름한 캐주얼옷, 덥수룩한 얼굴, 약쟁이 고객, 소변을 받아낸 물통 등으로 바뀌는 모습을 대조적으로 제시하여 웃음을 선사한다. 또한 마이클의 의뢰인이 국제적인 VIP 무기상에서 약쟁이로, 더 나아가 숙적 살인청부업자로 점점 하락하는 것도 코믹한 부분이다.

마이클은 킨케이드의 부하를 죽였고 킨케이드 또한 마이클을 수십 번이나 죽이려 했기 때문에 원수지간인 두 사람은 영화 내내 티격태격 싸운다. 마이클은 트리플A급 보디가드이지만 의뢰인 대신 총을 맞은 적이 없고, 킨케이드는 돈을 받고 의뢰받은 사람을 죽일 뿐 사적 복수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반된 입장과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의 갈등이 유대와 협력 관계로 바뀌면서 자신의 과거와는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상황의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이처럼 무사고/사고, 트리플A급/A급, 의뢰인의 변화(VIP/약쟁이/살인청부업자), 의뢰인 보호(자기 생존/희생), 살인의 목적(돈/우정) 등의 대비와 변화를 통해 상황의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이 영화는 성적 유머를 통한 대조, 이미지의 유사성 등을 통해 웃음을 창출하고 있다. 킨케이드는 팬티를 안 입으면 덜렁거려서 좋은데 마이클이 팬티를 입히는 바람에 계속 끼여서 불편하다고 투덜거린다. 또한 자동차에서 볼일을 해결하라며 마이클이 납작하고 조그마한 술통을 건네자, 킨케이드는 마이클은 그 통에 맞을지 모르지만 자기에게는 작다며 놀린다. 킨케이드는 “수녀 콘돔도 너보다 쓸모가 있겠다”며 마이클을 구박하고, 루셀에게 계속해서 자기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마이클에게 “연애고자”라고 빈정대는 등 자신의 성적 능력과 마이클의 무능력을 대비시키는 성적 유머를 계속 쏟아낸다.  

  

또한 차가 폭발할 때 불길이 거세게 일어나는 장면, 불길이 일어나는 불판에서 스테이크를 굽는 장면, 듀코비치의 부하들의 얼굴을 불판에 처박는 장면 등 이야기 전개에서 유사한 이미지의 연결을 통해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처럼 팬티-성기, 술통-성기, 수녀-콘돔, 연애고자, 패러더 등 성적 유머를 통해 대조를 강조하는 한편, 자동차 폭발, 스테이크 굽기, 사람 얼굴 화상 등을 연결하는 불 이미지를 통해 유사성을 강조함으로써 극적 재미를 유발하고 있다. <킬러의 보디가드>는 아이러니, 유머, 이미지 등을 통해 장르영화의 극적 재미와 웃음을 창출하고 있다. 

  

  

<더 킬러>에서 산티아고는 온정적인 베니와 순진한 마리나의 영향으로 변모하여 신처럼 받들던 루초가 아니라 베니와 마리나를 선택하게 된다. 시종일관 미온적 태도를 견지하는 베니보다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던 산티아고의 변화가 더 급격하게 일어남으로써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 영화는 성격의 아이러니, 상황의 아이러니, 부조화의 아이러니, 극적인 아이러니, 순진의 아이러니 등 다양한 아이러니를 통해 인물의 갈등, 현실/이상의 괴리 등을 드러낸다.

<킬러의 보디가드>에서 마이클은 자유로운 영혼이자 로맨티스트인 킬러 킨케이드의 영향으로 변모하여 자신의 자존심과 목숨보다 옛연인 루셀의 용서와 의뢰인인 킬러의 목숨을 선택하게 된다. 킨케이드도 숙적인 자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마이클의 영향으로 돈이 아닌 우정에 의해 사적 복수를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숙적관계인 완벽주의자 보디가드와 자유로운 영혼인 킬러의 조합을 바탕으로 성격의 아이러니, 상황의 아이러니, 성적 유머, 이미지 연결 등을 통해 극적 쾌감을 배가시키고 있다.

딜레마에 처한 인물은 그 압박감이 심해질수록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진정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은 불가능하며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한다. <더 킬러>는 딜레마에 처한 인물의 갈등과 압박감을 점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진지한 성찰과 숨막히는 긴장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킬러의 보디가드>는 딜레마와 선택 면에서 느슨한 플롯 구조를 통해, 인물들의 갈등과 대결이 화합과 유대감으로 유쾌하게 끝나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메를로퐁티에 의하면 순수함과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폭력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는 것이다. 두 영화에서 국가권력의 짝패인 킬러는 불법적인 폭력을 버리고 합법적인 폭력을 선택함에 따라 딜레마의 상황에 놓이고 대가를 치르게 된다.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인간의 본질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며 인간은 누구에게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볼 때 킬러는 문제적 인간이다. <더 킬러>와 <킬러의 보디가드>는 킬러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교환가치에 불과하였지만 어린 소녀와의 교감 혹은 서로간의 유대감을 통해 인간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전환된다. 두 영화는 이러한 지점을 다양한 아이러니로 표현함으로써 킬러영화의 장르적 쾌락을 잘 살리고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더 킬러> 개봉 예정.
< 킬러의 보디가드> 8월 30일 개봉.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와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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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곡숙

등록일2018-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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