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면 한 줄기 빛이 어둠을 가로지른다. 스크린에 이미지가 떠오른다. 영화사 도호(東宝株式會社)의 로고가 지나면 간단한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배경 설명이 짧게 이어진다. 그리고 검은 화면이다. 천천히 줌-아웃되며 형체가 드러난다. 거대한 크레이터다. 그 위로 붉은 글씨로 된 타이틀이 뜬다.
영사된 빛이 스크린에 닿는 데는 지각할 수도 없을 만치 짧은 시간밖에 걸리지 않지만, <아키라>가 한국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기까지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망원경을 통해 별빛을 관찰하는 천문학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아키라’가 일본어로는 ‘밝다’, ‘빛’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니 별빛이라 해도 과도한 비유는 아닐 것이다. <아키라>는 1988년 작이고, 한국에서는 아직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전이었다. <폭풍 소년>이라는 홍콩 영화로 둔갑하여 잠시 상영관에 걸렸다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니 재개봉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30년만의 개봉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오래 전별을 떠나 수억 광년 먼 거리를 통과해 이제야 지구에 도달한 조그만 별빛을 발견한 듯한 설렘으로 가볍게 흥분된다.
어떤 이는 <아키라>에서 정치적 함의를 읽어내고, 어떤 이는 히어로가 되지 못한 찌질한 사춘기 소년을 비웃고, 어떤 이는 핵에 대한 불안감을 발견하거나 인류의 미성숙함과 탐욕을 반성하기도 한다. 때로는 <공각기동대>나 <에반겔리온> 같이, <아키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법한 후대의 작품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크레이터처럼 기억의 표면에 깊게 패인 한 장면을 떠올린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유성팬으로 ‘AKIRA’라 적은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했던 순간, 돌돌 말린 마그네틱 필름이 들어 있는 VHS 테이프를 비디오데크에 밀어 넣던 순간, 친구가 PC통신에 올라온 글을 읽는 동안 작은 텔레비전의 주사선으로 그려진 이미지에 감탄하던 그 순간의 기억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이라고는 해도 어디선가 불법으로 복제했을 비디오테이프는 사다코의 그것처럼 이곳저곳을 떠돌고 있었으니까. 아직 인터넷이라는 것을 모르던 시절, 휴대폰이라는 것이 생소한 시절이었다.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서사는 탈락되고 사운드는 소거되었다. 1990년대 중반의 <아키라>는 질주하는 바이크와 기괴하고 거대한 괴물로 변해가는 소년이라는 두 개의 이미지로 남았다. 2017년에 보는 <아키라>는 또렷하지만 20여년 전의 희미한 <아키라>에 의해 간섭받는다. 제3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된 공안사회 네오도쿄를 배경으로 실험실에서 초월적 힘을 얻게 된 소년 테츠오가 겪는 각성과 파멸의 드라마는 핵폭탄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1988년 당시의 일본사회에 대한 은유이자 군국주의에 대한 경고와 인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가들의 무능, 자본가의 탐욕, 혁명가의 어리석음, 과학자의 무책임, 군인의 쿠데타, 종교인의 맹목성은 시종 인간에 대한 환멸과 혐오의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희망과 애정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오래된 두 개의 이미지로 소급된다.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는 사운드 위로 질주하는 바이크가 흘리고 간 빛의 잔상은 당시의 애니메이션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속도감을 맛보게 해주었다. 원리 로 보자면야 속도가 만들어낸 빛이겠지만, 빛이 만들어낸 속도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가 하면 영화의 후반 엄청난 힘을 제어할 수 없게 된 테츠오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스스로 증식한다. 염동력으로 기계 부품들을 조합해 만들어 붙인 팔에서 날카로운 금속 촉수들이 뻗어나와 담쟁이 넝쿨처럼 의자에 들러붙은 채 확장된다. 결국 기괴하고 거대한 괴물로 변하고 아키라의 힘에 의해 소멸하고 만다.
바이크의 속도와 테츠오의 확장이라는 두 개의 이미지가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도 마그네틱 테이프라는 아날로그 매체와 네트워크의 초기형태인 PC통신이 <아키라>를 보던 한 방안에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VHS테이프나 플레이어는 찾아보기 힘들고, PC통신은 인터넷과 SNS라는 광활한 네트워크로 변모했다. 테츠오의 증식으로부터 촉발된 거대한 빛의 폭발 속에서 세 명의 꼬마 실험체와 테츠오, 그리고 가네다와 아키라는 서로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소통한다. 마치 확장되는 네트워크의 세계 같다. 누군가 인류의 새로운 진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유전자의 나선 모양으로 배열된다. 진화란 더 이상 우리 신체 내부의 생물학적인 변화만을 일컫는 것이 아닐 것이다.
테츠오와 세 명의 꼬마 실험체를 집어삼킨 빛의 덩어리는 “또 하나의 우주”로 폭발한 빅뱅의 빛은 눈송이처럼 작게 응축되어 데츠오의 친구이자 그를 제거한 당사자인 카네다의 손 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의 손에는 스마트폰이라는 첨단 디지털 단말기가 있다. 오랜 시간차를 두고 다시 본 <아키라>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문명사적 변화의 징후에 대한 불안과 막연한 희망이 담은 예언서처럼 다가온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이대연
영화평론가. 소설가. 저서로 소설집 『이상한 나라의 뽀로로』(2017), 공저 『영화광의 탄생』(2016)이 있다.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