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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영화평

<파닥파닥>-한 줌의 희망을 남겨놓는 것에 관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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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닥파닥>

 

한 줌의 희망을 남겨놓는 것에 관한 문제

 

 

 

 

 

 

 

 여태까지 나름 많다면 많은 수의 영화를 보아왔지만 문득 숨이 턱 막히더니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눈물이 핑 도는, 그야말로 영화적인 체험을 한 적은 딱 두 번이 있었다. 레인맨에서 신들린 듯 자폐장애를 연기한 더스틴 호프만이 처음 등장했던 순간이 한 번이었고 파닥파닥의 말미, 올드 넙치와 고등어 파닥파닥의 생과 사가 엇갈리던 순간, 넙치의 생과 고등어의 죽음이 눈을 마주하던 그 순간에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죽게 될 자의 어리둥절함이 정면으로 충돌하던 장면이 다른 한 번이었다. 레인맨에서 내가 느낀 감정적인 당혹감은 오롯이 더스틴 호프만이라는 대배우의 몫으로 돌려도 마땅할 것 같다. 그의 등장신은 영화의 초반부였고 장면 자체로도 딱히 결정적인 장면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하나, 넙치와 고등어가 횟집의 수족관에서 마주보는 롱 쇼트의 장면에서 내가 느낀 그 먹먹함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바다에서 바다로, 다시 바다로

 

 

 

 

 파닥파닥은 바다를 코앞에 둔 수족관의 물고기들이 끝없이 바다를 품는 내용의 영화다. 이들은 모두 가슴 속에 저마다의 바다를 품고 있다. 다만 그 바다는 올드 넙치에게는 체념으로, 파닥파닥에게는 오롯한 희망으로, 놀래미에게는 비웃음으로 대상화되었을 뿐이다. 바다를 목전에 두고 결코 바다에 이를 수 없는 물고기들을 등장시킨 이 영화는 보기에 따라서는 희망은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만 한다는 생의 절박함으로도 읽힐 수 있고 단단하게 경직되어있는 체제와 홀로 마주하는 것에 관한 영화로도 읽힐 수 있지만 나는 영화의 중반부를 넘긴 시점에서 생각했다. 언뜻 어린이들에게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는 희망의 찬가를 부를 것만 같은 포스터를 보고 작품을 선택한 관객들을 정면으로 배신하는 이 영화는 그 것 이상으로 깊은 텍스트와 농도 짙은 은유를 지니고 있으며 바다가 진짜 거기에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다가 반드시 거기에 있어야만 한다는 처절한 장송곡이라고. 그리고 이 영화의 텍스트는 성경의 그것과 닮아있다고.

 

 

 

 

 

 

고등어는 어떻게 예수가 되었나

 

 

 

 

 

  파닥파닥의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예수의 이야기와 밀접하게 닿아있다. (애초에 물고기들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리스어로 물고기는 예수그리스도라는 뜻으로 초기 기독교인들은 물고기를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파닥파닥이 들어가게 된 수족관은 올드 넙치가 지배하는, 매일 밤 그가 주재하는 불합리한 게임을 벌이며 우승자가 꼴찌의 꼬리를 뜯어먹는 잔인한 법칙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파닥파닥은 저기 머지않은 곳에 바다가 있음을 호소하며 자신을 믿고 함께 노력하면 드넓은 바다로 갈 수 있음을 약속한다. 바다를 약속한 자에게는 머지않아 그 말을 믿고 따르는 신자(놀래미)가 생긴다. 그와 신자는 그가 약속한 바다를 확신하며 노력하고 설득하지만 올드 넙치의 수족관에서 그들은 비웃음을 당하는 박해의 대상일 뿐이다. 영화의 후반부, 삶과 죽음이 여러 번 교차하는 가운데 올드 넙치는 간신히 다시 삶을 유지하며 구원을 받고 올드 넙치를 대신하여 파닥파닥은 죽음을 맞이한다. 파닥 파닥의 죽음 이후 그가 약속한 바다로 들어갈 것임을 결심한 올드 넙치의 기도를 결정적으로 성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파닥파닥이 어리석은 열대어들의 수족관에서 찔리고 크게 상처를 입은 장난감 모형의 칼인데 이것은 직관적으로 로마 병사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기독교의 성물 룽기누스의 창을 연상시킨다. 음울함이 강력하게 지배하는 수족관으로 내려와 (파닥파닥이 수족관으로 입장하는 장면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하강의 이미지이다) 자신이 죽음으로서 그 자신을 박해한 올드 넙치를 약속한 바다로 이끌었다는 이 내용은 물고기와 장난감 칼이라는 상징과 맞물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그것과 놀랍도록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바다 출신과 양어장 출신으로 나누어지는 암묵적인 계급, 보이지 않는 벽, 죽은 척함으로서 이어가는 얇고 어린 삶의 아이러니, 불가사리의 다리가 50개가 되어버리는 체제의 부조리함, 성서를 연상케 하는 텍스트까지 파닥파닥은 수없이 많은 주제의식들로 설명 가능한 밀도 높은 영화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많은 영화를 봐야지만 고등어의 모습에서 예수를 연상할 수 있을까. 횟집 수족관 물고기들의 이야기에 숨이 턱 막히는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당연한 것의 당연하지 않음에 엄중히 항의 하는 영화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감사한 일이다. 이토록 차갑게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일은 그리 흔하게 찾아오는 기회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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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웅

등록일2013-02-10

조회수29,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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