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우주를 무화시키는 라스 폰 트리에
기복들은 있었다만 라스 폰 트리에는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괴기하게 자신만의 영화를 찍어왔다. 물론 모든 감독들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지만 특유의 우울증과 더불어 북유럽 특유의 비관주의와 체념주의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그가 찍는 영화들은 분명 트리에가 아니라면 만들지 못할 광기어린 것들이었다. 그런 그가 지구멸망에 관한 작품을 찍었으며 더군다나 지구를 파괴하는 행성의 이름이 ‘멜랑콜리아’라면 어떤 영화가 나올지는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 것이 ‘아마겟돈’식의 영화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쯤이야 모두가 짐작할 수 있었지만 트리에는 그 보다 훨씬 더 대단한 무언가를 들고 왔다. 단순한 지구 멸망을 넘어 인간에 대한 모든 환멸을 담아 우주를 무화시키는 <멜랑콜리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공간변인의 통제, 그 안에서 표현되는 인간에 대한 환멸
영화는 ‘저스틴’과 ‘클레어’라는 두 개의 막으로 이루어져있다. 1부 ‘저스틴’은 심각한 우울증으로 자신의 결혼식을 모두 망쳐버리는 저스틴 (커스틴 던스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부 ‘클레어’는 행성 ‘멜랑콜리아’와의 충돌로 지구가 파괴될 위험에 놓인 상황 속 클레어(샬롯 갱스부르) 가족의 이야기이다. 이 두 이야기는 등장인물과 공간적 배경, 인물 사이의 관계도가 동일하다는 점과 긴밀하게 매복되어있는 여러 상징과 의미 (콩의 개수, 전갈자리의 빨간 별 등등)를 제외한다면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로 보인다. 실제로 이 두 이야기가 스토리상으로 밀접하게 영향을 끼치며 진행되지는 않는다. 다만 둘을 강력하게 꿰뚫으며 공통점을 형성하는 감정은 인간에 대한 강한 회의와 제목그대로 ‘멜랑콜리아’, 즉 우울함이다. 이런 정서는 1부와 2부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게 연관되며 이어지는 행위와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1부에서 저스틴이 맨 처음 전갈자리의 빨간 별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는 장면을 보라. 저스틴은 골프장에서 소변을 보다가 별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 장면은 2부에서 클레어가 지구멸망이 다가왔음을 확신하고 동생 저스틴에게 부탁하는 장면과 그대로 상충한다. 테라스에서 모두가 함께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며 최후를 맞자는 클레어의 부탁을 비웃으며 저스틴이 하는 말. ‘차라리 화장실은 어때?’ 그리고 이 셋은 실제로 ‘멜랑콜리아’와의 충돌이 임박하자 골프장에 화장실처럼 생긴 오두막을 세워놓고 최후를 맞는다. 이렇듯 1부의 행위와 2부의 대사가 그대로 연결되며 결국 주인공들의 마지막까지 결정짓는 방식은 극중 저스틴의 대사와 맞물리며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을 암시한다. 라스 폰 트리에는 그녀의 입을 빌려 ‘지구의 생명체들은 모두 악이야’ , ‘이 우주에는 우리 밖에 존재하지 않아. 나는 분명 알 수 있어’ 라고 말한다. <멜랑콜리아>에서 성립되는 두 가지의 진리명제. 1. 우주에 생명체가 있는 곳은 오로지 지구뿐이다. 2.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악이다.
<멜랑콜리아>의 배경은 오로지 클레어와 그의 남편이 사는 저택뿐이다. 그 누구도 이 저택을 벗어날 수 는 없다. 말도, 골프카트도, 자동차도. 인물들에게 저택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용납되지 않는다. 강력하게 통제되어있는 공간적 배경은 중요하다. 저택은 ‘지구’나 다름없고 그 안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주인공들은 역시나 지구를 떠날 길 없는 ‘인간’들과 다를 바 없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들은 배설과 같은 행위와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라스 폰 트리에의 강한 환멸은 여타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한 티끌의 희망이라도 남겨두는 법 없이 지구를 날려버린다.
신경질 적인 편집은 특히 1부와 프롤로그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눈을 감은 주인공과 하강의 이미지, 불능의 이미지로 덧칠되어져 있는 트리에 특유의 슬로모션 프롤로그는 이 영화의 주제곡인 바그너의 음악과 함께 영화전체를 축약해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1부의 편집은 시종일관 지속되는 헨드헬드, 점프컷, 불편하리만치 가깝게 다가서 저스틴의 불안과 짜증을 관찰하는 클로즈업 등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1부와 2부를 지속적으로 장악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불능’이다. 이 요소는 프롤로그 이후에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저스틴과 그의 남편을 태운 리무진은 끝끝내 움직이지 않고 그들은 늦고야 만다. 저스틴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불능’ 그 자체인데 1부의 주인공들 중 자신을 온전히 통제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우울을 견디지 못하는 저스틴은 물론 예민함으로 가득한 그의 부모, 상사와 부하의 모습까지 보다보면 자연스레 앞서 언급한 트리포의 공간적 배경이 몹시 중요해짐을 알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가장 행복할 순간인 결혼식마저 ‘화장실’로 표현되고 치환되며 더 나아가 ‘사악한 생명들이 사는 지구’-반드시 사라져야만 할 행성의 의미까지 지니는 저택에서는 말 그대로 ‘멜랑콜리’함이 넘쳐흐르는 불길한 의식이 될 뿐이다.
<멜랑콜리아>는 신경질과 불안과 짜증과 환멸로 가득한 영화며 그 사실을 굳이 숨기려는 의도 없이 프롤로그에서부터 명징하게 밝히고 시작하는 영화다. 우주에서 생명체가 사는 유일한 행성 지구. 지구의 생명체는 사악하다. 두 진리명제를 구태여 대사로 까지 언급하며 트리에는 반드시 지구를 파괴시켜 우주를 무화함으로써 정화해야한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멜랑콜리아>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로 가장 범우주적인 영화다. 그 어떤 할리우드 재난영화도 이렇게 멜랑콜리하게 모든 것을 ‘무’로 돌려놓지는 못했다.
PS. 나는 항상 영화를 보기 전에 가급적 그 작품에 관한 평은 읽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왜냐하면 평을 읽은 뒤에 영화를 보면 남의 의견에 영향을 받을뿐더러 그것을 나의 것으로 착각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특정한 행사에서 <멜랑콜리아>를 처음 관람하였기 때문에 영화를 보자마자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프닝 시퀀스와 프롤로그, 편집의에 대하여 쓴 부분에서는 불가피하게 해설의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