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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시네마 logue] 써니<세계일보>

말기암 40대 여인 죽음 앞두고“여고시절 친구 만나고 싶다”
  • 2009년은 ‘과속스캔들’의 해로 기억된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2008년 늦은 겨울 개봉한 이후 서서히 불붙기 시작했던 영화의 인기는 해를 지나 설 연휴까지 지속되었다. 비단 흥행에서만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라서 강형철 감독은 2009년 청룡영화상, 한국 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받고,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시나리오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감독의 행운을 누린 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과속스캔들’이 강형철 감독의 데뷔작이었다는 사실이다. 지나치게 어려운 작가주의나 값싸고 저열한 코미디가 아닌 가족이 함께 볼 만한 상업영화의 시작으로 보였다. 새로운 영화적 활로에 대한 기대감도 강형철이라는 이름 뒤에 따라다니게 되었다.

    2011년, 3년 만에 강형철 감독은 ‘써니’라는 영화로 돌아왔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하루하루 별 다를 사건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나미’가 우연히 여고시절 친구 ‘춘화’를 만나게 된다. 왕년의 춘화는 ‘하춘화’라는 이름만큼이나 여고의 유명인사였다. 의리파 싸움짱 하춘화! 그런데 그 춘화가 말기암으로 남은 시간이 두 달도 채 되지 않는다며 나미에게 부탁을 한다. 죽기 전에 고교시절 친구들, ‘써니’의 멤버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이다.

    이후 영화는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어느 새 40대 중반이 되어 버린 써니 멤버들 찾기이고, 다른 하나는 플래시백 너머에서 등장하는 과거 써니 멤버들의 추억담이다. 흥신소에 부탁해 친구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장면과 맞물려 과거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기억은 주로 나미가 떠올리고 그녀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던 졸업 앨범 속 친구들이 등장한다.

    영화 ‘써니’가 의존하고 있는 것은 바로 1980년대의 복고적 분위기가 불러일으키는 향수이다. 1980년대 여고생들의 지표라고 할 수 있을 ‘나이키’에 대한 집착이나 1980년대 유행가를 곳곳에 배치한 의도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라 붐’의 주제곡을 들으며 헤드폰을 나눠 낀다거나 ‘터치 바이 터치’가 흐르는 거리에서 옆 학교 여학생과 싸우는 장면도 그렇다.

    강형철 감독이 80년대 정서 중 중요한 부분으로 인용하는 또 하나는 바로 늘 데모하던 대학생 오빠들에 대한 추억이다. 흥미로운 것은 데모와 화염병, 최루탄을 늘 맞고 다녔던 그 길거리에 불량서클 멤버라고 할 수 있을 써니의 추억이 고스란히 겹친다는 점이다.

    강형철 감독은 당시 대학생 세대들, 그러니까 소위 386세대들이 80년대에 가진 부채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전경과 대학생들의 몸싸움을 ‘터치 바이 터치’라는 팝송의 가벼움으로 대체하는 것도 그렇다. 민주화나 독재반대와 같은 구호들은 옆 학교 ‘짱’과의 결투와 섞여 구분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강형철 감독에게 운동권 대학생들은 늘 그렇게 거리를 맴돌던 추억 중 하나인 셈이다.

    문제는 80년대 정서에 대한 호소가 어딘가 너무 진부하고 식상하다는 사실이다. 최근 유행 중인 서바이벌이나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도 80년대 혹은 과거의 정서에 상당부분 호소한다. ‘써니’에서 인용하는 80년대는 과거 ‘품행제로’와 같은 영화에서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던, 놀았던 아줌마, 아저씨들에 대한 기억의 밀도에 비해 상당히 밋밋해 보인다.

    여고생들의 추억이라고는 하지만 유리창을 깨고 자퇴를 선택하는 여고생에게선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의 흔적이 떠오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영화계에선 성공적 데뷔를 거친 감독들의 2년차 증후군을 서퍼모어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관객들의 평가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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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1-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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