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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 아래 잠든> - 정민아

정민아 (영화평론가)


개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 영화 도입부는 개의 시점샷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메라는 개가 보는 낮은 눈높이로 복도를 빠르게 지나가고, 시야각은 다소 좁으며 색채는 모노톤이다. 오프닝 시퀀스는 낯선 시각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특이한 경험을 제공한다. 시점의 주인은 이내 조그만 개 임이 밝혀진다. 슬픔을 담은 순진한 눈을 가진 개는 편지를 가져와 어떤 중년 남성에게 비밀스런 사연을 전달한다. 

은행을 다니다 그만 두고 시계 수리공으로 일하는 루시오는 아내인 디아나가 아이를 못 낳는 대신 개를 입양하고 싶어하자 흔쾌히 동의한다. 그리고 그 분야의 전문가인 스텐달 교수에게 상의하기로 한다. 디아나는 철창에 갇혀있는 개를 유심히 관찰하고 개는 멀뚱한 큰 눈을 끔뻑이며 그녀와 교감을 나눈다. 카메라는 무언의 대화를 주고 받는 사람과 개를 클로즈업으로 교차하며 둘의 정서적 교감을 최대한 시각화하려고 애쓴다. 루시오의 시계들은 갑자기 일정한 시간에 멈추고 그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스텐달 교수는 개의 선택에 망설이는 디아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치료라는 명분하에 어느 누구의 방문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나날이 경과한 후, 집으로 돌아온 디아나는 예전의 친절하고 사려 깊은 아내가 아니다. 친척도 몰라보고 습관도 달라졌으며 취향도 딴판이다. 이에 대해 의심을 품은 루시오는 스텐달 교수를 찾아가고, 그도 디아나와 같은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화는 일견 낭만적이고 따뜻한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는 가슴 절절한 러브스토리 같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개와 인간의 영혼이 교환되는 판타지이며, 초현실 세계로 가는 꿈꾸는 뇌의 주름이 펼쳐 보이는 미장센의 향연이다. 현실과 환상을 왕래하는 이 이야기는 현대 정치에 대한 우화인 듯하다. 루시오가 받는 스트레스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통제되고 조작되는 초현실적 악몽이다. 전문가의 음모에 반기를 들지 못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는 판옵티콘의 현대 사회에 대한 저항이 남미식의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재현되었다.

영화의 데자뷰 효과라면, 우리는 이미 <이터널 선샤인>이나 <신체강탈자의 습격>을 통해서 경험한 바 있다. 인간의 아픈 뇌를 품은 개의 순수한 눈동자는, 인간의 교활하고 사악한 표정과 대비되어 비인간들이 득실대는 현대 사회를 풍부하게 은유한다. 개야, 사악한 인간 때문에 죽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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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1-12-18

조회수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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