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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 안녕 나의 작은 방, 숀 베이커의 ‘플로리다 프로젝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무니는 플로리다주 올랜드에 위치한 모텔촌에 살고 있는 여섯 살 어린아이다. 경기침체로 인한 주거문제에 보다 직접적으로 직면한 미국 하층민들의 삶은 국내에서도 개봉한 <빅 쇼트>(2015)나 <라스트 홈>(2014)과 같은 영화들이 주요한 소재로 삼기도 했던 것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의 주된 배경이 되는 모텔 ‘매직 캐슬’에는 주 단위로 계약하는 장기투숙객들이 주로 거주하는데, 이는 2008년 이후 생경하기는커녕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린 불안정한 주거환경의 일부이다.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엄마 핼리(브리아 비네트)역시 그러한 장기투숙객으로 매직 캐슬에 거주하고 있다. 영화는 무니와 친구들의 여름을 지켜보는데, 즉흥적인 놀이와 제약이 없는 장난으로 채워진 이들의 여름은 몇 가지 사건들을 겪으며 결코 낙관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결말을 향해간다. 

굳이 정리한다면 핼리에게 양육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아동보호국의 등장이 영화의 서사를 종결짓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핼리는 안정된 직업 없이 여러 일을 전전하거나 때로 물건을 훔쳐 파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당연하게도 무니는 엄마와의 이별을 감지하게 되는 상황이 오자 격렬히 저항한다. 국내에서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개봉하며 홍보의 테마로 삼은 ‘힐링’만 믿고 영화를 보았다가 기대와는 완전히 달랐다며 홍보방향을 질타하는 여론이 형성된 바 있는데, 아마도 이와 같이 적나라하게 제시되는 현실과 결말로 향해가는 서사의 굴곡이 그러한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비참한 삶을 완전히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거나, 예상치 못한 서사로 인해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종류의 영화는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의 결말이 몇 가지 사건들의 연쇄로 인해 도달하게 되는 종착역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는 점을 짚어야 할 것 같다.

  
 
무니와 친구들의 장난으로 인한 화재나 핼리의 성매매와 같은 사건들로 인해 인물들의 관계가 틀어지고 무니가 핼리와 헤어지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으로 제시되지만, 정작 영화의 종결을 예감케 하는 다른 장면이 있다. 무니는 길 건너 모텔에 새로 와 친구가 된 젠시(발레리아 코토)와 시소를 타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라는 곳’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그곳에는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다더라, 내가 들었는데 쉬는 시간이라는 게 있다더라, 하지만 재밌는 건 그 짧은 쉬는 시간뿐이라더라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영화를 지탱해왔던 것이 아이들의 의미 없고 경계가 없는 놀이였음을 상기해본다면, 무니와 젠시가 이야기하는 학교의 사회화되고 경계 지어진 시간은 실은 그 무엇보다도 놀이로 지탱되는 이들의 세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는 때로 비도덕적이다. 영화는 아이들이 새로운 투숙객의 차에 침을 뱉고 그 침을 닦는 것조차 놀이로 만들어버려 어른의 우려를 사는 것으로 시작한다. 모텔 매니저 바비(윌렘 데포)의 말에 따르자면 아이들은 수영장에 죽은 물고기를 넣어두거나 관광객들에게 물풍선을 던지는 장난을 치고, 출입이 금지된 제어실에 들어가 모텔 전체를 정전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놀이가 종종 관람의 형태를 띤다는 점이 또한 흥미롭다. 어느 날 밤, 모텔을 잘못 찾은 신혼부부의 당황과 짜증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며 자신들만의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여보는 무니와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 혹은 가슴을 노출하고 일광욕을 하는 나이든 여성 투숙객과 바비의 말다툼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노는 장면이 있다. 이를테면 아이들의 놀이는 세계의 표면을 매번 자의적으로 감각하는 활동이다. 이는 어른들의 갈등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발생하며 즉각적으로 소멸한다. 놀이는 연결되지 않는다. 핼리는 거의 유일하게 이 놀이에 동참하는 어른으로, 그녀의 행동은 대체로 ‘철이 없다’는 말로 설명되는 종류의 것이다.

이와는 대비되는 형태의 관람이 영화에는 등장한다. 무니와 스쿠티와 젠시가 버려진 주거촌에 들어가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이는 큰 화재로 번진다. 곧 주민들은 모여 화재를 구경하는데, 이 구경거리는 아이들이 줄곧 지속해온 놀이와는 다르게 구경꾼들의 이목을 한곳에 집중시키며 ‘불타는 집’은 관객들에게도 실패한 주거대책이나 열악한 주거환경과 같은 의미를 환기하는 것 같다. 모텔 앞에서 벌어지는 큰 싸움을 모텔 투숙객들이 구경하는 장면 역시 유사하다.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자의적 놀이가 가능한 틈새가 열리지 않기에, 이 관람은 구경거리의 속성(화재나 싸움)만큼이나 폭력적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조각나고 실패한 관계(핼리와 애슐리, 바비와 그의 아들)가 이 장면들에 뒤이어 제시되는 것은 아마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공간에서 터지는 폭죽, 무지개, 비가 온 뒤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바라보는 행동들은 인물들에게 가능한 최소한의 저항처럼도 느껴진다.

  
 
이처럼 아이들의 놀이를 위협하는 ‘현실’은 사실 언제나 모텔 방 문 바깥에 도사리고 있던 것으로, 종종 문틈을 통해 무니의 놀이를 비집고 들어왔었다. 아이들의 장난을 지적하러 와서 밀린 방값과, 이런 문제가 계속되면 모텔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고 말하는 바비를 바라보는 무니는 마치 밀려들어오려는 현실의 시간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방에 찾아온 성구매 남성이 욕실 문을 열어 목욕 중인 무니를 당황케 하는 장면에 이르면, 이제 현실의 시간은 방 전체에, 또한 무니의 눈앞에까지 들이닥쳐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더욱 매정한건 아이들이 점차 커간다는 사실이,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라서 학교에 가며,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실의 규칙이기에, 굴곡진 사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놀이로 추동되는 영화의 세계는 현실 위에 겹쳐지는 순간 필연적으로 종결되어야만 한다. 영화의 끝에 이르러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 무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매정한 사실을 깨달은 자의 눈물이다. 마지막으로 무니와 젠시가 내달려 도달한 디즈니랜드는 환상적인 공간인 동시에 가장 세속적인 공간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아이들의 놀이도, 세계를 구동하던 놀이의 규칙도 모두 끝났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일말의 희망을 길어내려는 감상들도 더러 존재하지만, 사실 영화의 정서는 더없이 무력하다. 이 무력함을 알면서도 아이들의 놀이를 지켜보며 영화의 시간을 지속시켜 보려던 선택을 존중하지만, 영화에 새겨진 파편적이고 분열적인 감각들이 그 무력함을 마주하는 순간을 최대한 미뤄두려는 데서 발생하는 것 같다는 점 역시 함께 말해두고 싶다. 

글 : 손시내
2016년 영평상 신인평론상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에서 활동 중.

* 글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르몽드 시네마 크리티크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40&view_type=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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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서성희

등록일2018-05-08

조회수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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