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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영화평

그래비티-블록버스터의 반대에 선 블록버스터, 또 하나의 스페이스 오페라

그래비티-블록버스터의 반대에 선 블록버스터, 또 하나의 스페이스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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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비티

    감독
    알폰소 쿠아론
    출연
    산드라 블록, 조지 클루니
    개봉
    2013 미국, 영국

    리뷰보기

 

 

 

 

 

 

 

 

 

 우주에 홀로 덩그러니 방치된 우주비행사가 표류한다. 등장인물은 고작 두 명. 흥미로운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어떻게 긴 호흡을 가지고 갈 것인지가 궁금했다. 개봉 전부터 들려오는 평들이 심상찮았다. 토론토 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으로 주목받더니 이어지는 반응들이 하나같이 호평일색이다. 나는 기대에 가득 찬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섰고 영화를 보는 중간 중간 신경이 곤두섰으며 가끔씩 울컥거렸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는 내 마음은 좋은 영화를 만났을 때의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이 글은 그래비티가 왜 좋은 영화인지 설득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다. 단언컨대, 당신이 이 영화를 본다면 올해 와이드 릴리즈로 공개된 영화들 중 최고작을 보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선적으로, 더불어 필연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오프닝에서부터 수려하게 제시되는 롱테이크의 미학이다. 지구를 향해 점처럼 다가오며 커지는 우주선, 그 우주선을 수리하고 있는 세 명의 우주인, 그 세 우주인의 주변을 아무 제약 없이 자유롭게 부유하며 담아내며 20여분 남짓 지속되는 롱테이크는 이 영화가 주로 사용하게 될 미학적 선택을 노골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그 선택이 얼마나 적합한 것인지도 보여준다. 이 선택이 훌륭한 이유는 제목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래비티는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적용되는 중력의 법칙이 여기에선 무효하다. 이 순간 카메라가 대상에게 다가갈 수 있는 범위는 거의 무한해진다. 중력이 있고 위와 아래의 구분이 존재하던 지구에서는 자유롭게 시도하기 어려웠던, 유영하듯 제한 없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가능해지며 중력 현실을 가정한 영화였다면 지극히 복잡한 계산 아래 시도해야만 했을 기나긴 롱테이크의 부담도 한결 덜었다. 영화가 전제한 현실에 가장 적합한 촬영 방식을 영리하게 잘 사용한 셈이다. 주인공이 염력을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자라는 영화적 설정 아래 공중에 떠 있는 여러 대의 카메라 시점 쇼트를 사용한 크로니클 이후로 가장 눈에 띄는 창의력이다. 더불어 이런 식의 유려한 롱테이크는 대부분의 SF에 대해 진부했던 마음을 일소하기에 충분하다. 빠른 편집과 정신없이 흔들리는 액션이 아닌, 이토록 매끈한 롱테이크의 오프닝을 SF에서 만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런 오버하지 않는 정갈한 촬영의 방식은 서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등장인물을 하나씩 추려나가는 방식으로 극을 단순화하고 있다. 고작 세 명의 우주비행사를 등장시키더니 한 명은 거의 비중이 없다시피 한 상태로 사망하고 조지 클루니 역시 중반부를 넘어서는 사라진다. 그 이후로는 산드라 블록이 온전히 극을 끌어간다. 세 명에서 두 명으로, 다시 한 명으로 등장인물을 파격적으로 줄여나가지만 그로 인해 서사가 처지기는커녕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놀라운 사실은 이쯤 되면 당연히 플래시백의 유혹에 빠질 법도 하건만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알폰소 쿠아론은 제작사 측으로부터 플래시백을 사용하라는 압력을 받았지만 끝까지 거부했다고 밝혔다) 끊임없이 지구 궤도를 맴돌며 우주의 스펙타클을 선사하는 이 영화에서 플래시백이라는 편의적 방법을 사용하여 갑자기 지구 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작품의 흥미는 훨씬 떨어졌을 개연성이 높다. 우주 공간에 홀로 고립된 여비행사의 재난이라는 서사의 단절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을뿐더러 지속적으로 제시되는 우주공간의 이미지와 인물의 감정에 대한 몰입 역시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비티는 이런 어리석은 선택 대신 얼핏 무의미해보이는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와 휴스턴과의 대화, 코왈스키와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의 대화, 스톤 박사의 독백, 지구에서 잡히는 라디오, 라디오와 스톤 박사의 대화로 시간들을 채워나간다. 이 무의미해 보이는 장광설과 대사들의 범람에는 단순히 말로 시간을 채우려는 시도 이상의 무엇이 있다.

 

 

 

 

 영화는 그래비티’, 즉 중력이라는 제목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중력 상태인 우주공간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 이어지는 추가적인 역설. 이 우주공간에는 사실 어디보다도 여실히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지구로부터의 중력. 인물은 결코 지구를 벗어날 수 없다. 지구의 궤도를 따라 맴돌 뿐이며 지구는 저 멀리 존재하는 듯 보이면서도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결코 지구에는 내려 앉아 착륙할 수 없지만 비행사는 지구로부터 멀어질 수도 없다. 지구는 너무도 찬란하고 엄중하게 버티고 서 있지만 그녀를 죽이지도, 살리지도 않은 채 주위에만 맴돌게 내버려 둔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우주 비행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라고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 혹은 이마저도 안 된다면 혼자서 독백을 하거나 지구로부터 날아온 라디오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결국 어쩌면 이 장광설과 독백의 향연은 알폰소 쿠아론이 가장 효과적으로 취한 플래시백 아닌 플래시백인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직접적으로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일은 너무도 편의적이기에 말의 형식을 빌렸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통한 플래시백의 사용은 지구의 밖에서 떠도는 우주비행사를 그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지구 밖으로 벗어날 수 없음을 알려준다. 결국 영화 속 우주비행사들은 지구의 중력에 단단히 매어있는 것이다.

 

 

 

 

 더불어 스톤 박사와 코왈스키가 나누는 대화, 개개의 독백은 그들 자신이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견뎌내기 위해 끊임없이 지구의 기억을 가져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들은 지구에 있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장광설을 통하여 필사적으로 지구에 있었을 때의 기억을 불러오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다. 얼핏 아무 소용없어 보이는 휴스턴과의 농담 따먹기와 옛날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던 이야기 등등이 대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우리는 지구의 바깥에 있다면 지구에서의 기억을 소환해서라도 존재해야만하기 때문에. 자신을 고정해 주는 줄이 끊어지고 패닉 상태에 빠진 스톤 박사에게 코왈스키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은 그래서 단순히 진정시키는 장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스톤 박사보다 훨씬 오랜 기간 우주에 있었으며 최대 유영시간 기록을 깨고 싶었던 코왈스키 박사는 이 막막한 우주에서 견뎌내는 일은 기억을 통해 저 눈 앞에 있지만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지구를 직접 가지고 오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말이다.

 

 

 

 이 외에도 스톤 박사가 죽기를 결심했다가 다시 생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소유즈 호 장면을 마치 자궁 속의 태아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거나 지구로 무사 귀환한 스톤 박사가 물에 빠졌다가 다시 흙을 밟고 굳게 일어서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탄생을 은유하는 장면 등등 그래비티는 영화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훌륭히 표현해 낼 줄도 안다. 90분의 서사를 굳건히 끌고 가는 산드라 블록의 연기는 말 할 것도 없다. ‘그래비티는 올해 극장가에서 목도할 수 있는 가장 묵직한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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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박웅

등록일2013-10-26

조회수38,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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