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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영화와 비평의 활력, 그 가능성 및 한계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비평 세미나 : 주제발표 2

 

한국의 영화와 비평의 활력, 그 가능성 및 한계

 

달시 파켓 (영화평론가, 스크린인터내셔널 기자)

 


영화비평의 축소 혹은 죽음?

   최근 몇 년 동안 영화비평의 축소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종이 매체에 드러나는 전문적인 리뷰 숫자의 감소,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비공식적이고 비전문적인 영화리뷰의 확산은 영화비평 분야에 격변을 가져왔다. 과거 이 현상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영화비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소 협소한 시각을 채택해왔다. 이는 영화평을 쓰는 사람이 영화리뷰의 현재 상태에 대하여, 또는 그것이 미래에 어디로 향해 갈 것인가에 대하여 특정한 주장을 성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비평의 무수히 많은 역할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는, 더 넓고 더 미묘한 시각을 채택하는 것이 특히 중요해 보인다.

 

   논평자들이 영화평론가의 힘이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보통 영화평론가의 특정한 역학을 언급한다. 우선, 해당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한, 그래서 리뷰에 근거해서 그 영화가 볼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려는 독자에게 정보와 의견을 전달하는 직업적인 평론가의 역할이 그것이다. 이는 영화평론가들과, 그 평을 읽는(또는 TV나 라디오의 경우에 시청하거나 청취하는) 공중公衆이 맺는 특정한 종류의 관계이다.
    미국에서는 로저 에버트(Roger Ebert)가 지난 수십 년 동안 폭넓은 추종자를 얻었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영화관람 선택에 있어서 분명 영향을 미쳤다. 개인적으로, 나는 에버트가 1994년 저예산 다큐멘터리 <후프 드림스 Hoop Dreams>를 열정적으로 옹호했던 것이 기억나는데, 그의 글에서 영감을 받아 결국 나 자신도 그 영화를 빌려서 보게 되었다. <후프 드림스>를 그해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선정함으로써, 에버트는 그 영화의 예상치 못한 상업적 성공에 상당히 큰 공헌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평론가들의 후속 세대에서는 그런 예를 찾아보기란 더더욱 어렵다. BBC 라디오에서의 방송을 통해서, 마크 커모드(Mark Kermode)는 명백히 영국에서 (그리고 다운로드 할 수 있는 팟캐스트를 통해서 전세계적으로도 점점 더) 광범위한 관객들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미국에서도 뉴욕타임스의 A.O. 스콧(A.O. Scott) 이나 마놀라 다기스(Manohla Darghis)와 같은 특정 평론가들은 그들의 구미에 맞는 특수 관객층에게 어떤 영향력을 휘두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더욱 일반적으로, 오늘날 주류 관객들은 친구들의 추천에 따라 또는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킹 미디어에 나타나는 코멘트에 근거해 어떤 영화를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주목하면서, 많은 논평자들은 영화평론가는 더 이상 아무런 유용한 목적에 봉사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영화비평은 사실상 죽었다는 결론을 내려왔다.

 

   그러나, 물론, 영화비평은 이러한 협소한 정의 이상의 것이다. 비록 ‘소비자 가이드’라는 측면에서 영화 리뷰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해도, 그것은 시네마에 대한 유익하며 깊이 있는 글쓰기가 더 이상 아무런 영향이나 목적이 없다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우선, 평론가와 독자의 관계는 내가 위에서 서술한 역학보다 종종 훨씬 더 복잡하다. 독자들은 하나의 작품에 대해 더 깊은 통찰을 얻거나 다른 의견을 듣기 위해서 그들이 이미 본 영화에 대한, 또는 볼 생각이 없는 영화들에 대한 리뷰를 읽는 것이 유용하며 흥미롭다고 여긴다. 만일 독자들이 일정한 기간 동안 특정 평론가의 글을 따라가며 읽는다면, 그들은 묘사되는 영화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그 필자의 개성과 글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영화비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으며 그것의 효용성이라기보다는 그 성취에 대해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것이다.

 


영화비평에 있어 평론가와 감독의 성찰적인 관계

   오늘 내가 특히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영화비평에 있어서 종종 간과되어온 양상으로서 바로 평론가와 영화감독의 관계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몇 가지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특정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어떤 감독(또는 배우, 촬영감독 등등)은 그 또는 그녀의 작품에 대한 하나의 비평을 읽고 그것에서 영감을 받거나 격분할지도 모른다. 평론가는 해당 영화에서 어떤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도 있고, 감독은 그 또는 그녀의 다음 영화에서 이를 벌충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비록 그 감독이 그 비평에 동의하지 않거나 거부한다 해도, 그것은 그나 그녀의 마음 한 켠에 남아있을 것이며,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삶에서 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거부하는 비평가들은 종종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곤 하는데, 분명 이는 영화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평론가들은 또한 한 영화에서 감독들이 깨닫지 못하는 측면을 지적하고, 그들이 자신의 영화를 새로운 ‘조명’ 아래 보는 것을 도와줄지 모른다. 비록 한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많은 것이 의식적으로 배치된 것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감독들은 각 영화에 무의식적 동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요소들이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러한 패턴이나 특색을 지적함으로써, 평론가들은 해당 영화를 더 잘 이해하도록 관객뿐 아니라 감독들 또한 돕는다. 그리고 감독들이 그들 자신의 창의적 경향들을 더욱 자각하게 될 때, 이는 그들의 미래 작업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많은 감독들은 경력이 쌓이는 동안 몇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이는 그들의 미학이 진화할 때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소재를 다루게 될 때이다. 이 진화의 원동력은 새로운 삶의 경험이나 다른 사람과의 협력 등을 포함해 다양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각이 증가하는 것 또한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후자에 대한 비평가들의 공헌은 분명 사소한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더 일반적인 의미에서, 좋은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그의 또는 그녀의 삶 전체에서 시네마의 예술에 대해 항상 더욱 많은 것을 배우는 학생으로 남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비평 작업은 그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영화감독에 대한 비평가의 영향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영국 시인 W.H. 오든(W.H. Auden)이 남긴 글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 글에서 그는 문예비평 그리고 예술비평 작업에 있어서 흥미롭고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을 서술했다. 영화감독들에게도, 중첩되는 많은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내 경우, [평론가는] 다음의 역할 중 하나 이상을 나에게 해줄 수 있다. (1)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작가나 작품들을 나에게 소개한다 (2) 한 작가나 하나의 작품을 충분히 주의 깊게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평가절하해 왔다는 사실을 확신시킨다 (3) 나 자신이 충분히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모를 수 있는 서로 다른 세대와 문화의 작품들 간의 관계를 나에게 보여준다 (4) 한 작품에 대한 나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독법’을 제시한다 (5) 예술적 ‘창작’의 과정에 대해 조명한다 (6) 예술의 삶에 대한, 과학에 대한, 경제학, 윤리학, 종교 등에 대한 관계를 조명한다. (W.H. 오든, <염색하는 사람의 손 The Dyer’s Hand>에서)

 

   영향이라는 문제와는 별도로, 영화비평과 영화만들기 사이에는 더 폭넓은 유대관계가 있다. 통찰력 있고 열정적인 비평은 때로 어떤 영화에 대한 관객층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비록 주류 개봉영화를 위해서라면 그 효과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더 작은 특수 영화들은 그 이상의 이득을 누릴지 모른다. 홍상수는 대중적인 상업영화 감독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그는 저예산으로 영화를 찍은 뒤 제한된 극장 개봉을 통해 수익으로 전환시키는 데 충분한 관객층을 그럭저럭 일궈왔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있어서 관객들을 돕는, 수년 동안 평론가들이 써왔던 상당수의 논평과 에세이가 아니었더라면, 그의 관객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었으리라는 점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비록 영화감독과 평론가의 관계가 때때로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밧줄로 함께 묶여 있는 두 개의 몸뚱이와 같다. 그들은 한 영화산업이 부상할 때 함께 떠오르며 위기에 빠질 때 함께 고통을 받는다. 일련의 영화감독들이 혁신적이고 흥미진진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할 때면, 영화비평은 그러한 영화들의 힘을 설명하고 그 중요성을 부여할 임무를 맡게 된다. 독자 수는 올라가고, 평론가들은 새로운 영화운동에 유의미한 방식으로 기여한다. 역으로, 한 영화산업이 창조적 위기에 빠지고 흥미로운 작품을 제작하는 데 실패할 때면, 그 나라의 영화평론가들 또한 고통스럽다. 복잡다단하고 혁신적이거나 또는 논쟁적인 작품에 대해서 글을 쓸 때보다 특별할 것 없는 영화에 대해 완결된 글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한 영화산업이 관객을 잃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영화잡지를 더 적게 사고 리뷰를 읽는데 더 적은 시간을 들이기 시작한다. 수입 영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지 않는다면, 평론가들 역시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新한국영화(New Korean Cinema) 형성에 끼친 영화평론가의 역할

   한국에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영화산업의 성장은, 라디오와 TV 그리고 인터넷에서 벌어지고 있던,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의 확장뿐 아니라 그보다 몇 년 앞선 영화잡지 <씨네21>과 <키노>의 창간에 뒤따르는 일이었다. 평론가와 기자들이 한국영화의 부흥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과장이겠지만, 그들의 공헌을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된다. 영화비평이 실제 세계에서 갖는 영향력을 양화하기 어렵다는 점이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김지운, 봉준호, 류승완, 임상수, 이재용 등을 포함해 1996년과 2000년 사이에 데뷔했던 많은 영화감독들은, 전세계의 광범위한 영화연출 스타일과 장르에서 영향을 받은 시네필 세대로 묘사된다. 그들 스타일을 정의하는 면모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유럽과 아시아의 예술영화에서 받은 영향을 드러내는 한편 또한 상이한 장르를 혼합하고 뒤틀었던 방식이다. 수많은 영화를 본 다년간의 경험은 그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발전시킬 때 고르고 선택할 수 있는 일련의 영향을 주었다. 평론가 김영진은 이러한 운동에 생기를 불어넣은 에너지를 “아버지 없는 자식들의 모험 정신”이라고 지칭해 왔다. 이는, 젊고 유망한 영화감독들이 국가적 영화유산의 대표적인 감독들에 영향을 받는 동시에 그들과의 관련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도록 강요 받은 프랑스나 일본 같은 나라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1990년대 말 한국에서, 한국영화를 정의했던 자국 감독은 임권택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새로운 세대의 영화감독들은 전세계로부터 받아들인 색다른 다양한 영향을 드러냈으며, 궁극적으로 한국영화를 그들 자신의 용어로 재정의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과 중반은 이 세대 감독들의 (데뷔 전) 형성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때 영화평론가들은 덜 알려진 전세계의 작품들을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가 영화 수입을 엄격히 규제했던 1980년대에 뒤이어 등장했던 이 ‘시네필리아의 시대’는, 전세계의 매우 도전적인 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영화들이 한국의 관람자들 가운데서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한 관객층을 찾아내던 시기였다. 새로운 영화감독을 소개하고 열렬한 자국 영화팬들의 지식을 넓히는 어려운 일은, 박스오피스에도 그리고 전도유망한 영화감독들의 마음속에도 배당금을 지급했던 것 같다. 당시 그런 영화들에 대해서 글을 썼던 평론가 중 한 사람이 중요한 영화감독으로 등장하게 된 것도 가히 적절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나는 박찬욱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지난 10년 동안 상업적인 그리고 창조적인 의미에서 꽃을 피웠을 때, 영화평론가들은 자연스럽게 자국 내 영화감독들에게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1999-2006년의 시기는 돌이켜볼 때 대체로 한국 영화산업뿐 아니라 영화 비평에 있어서도 붐을 일으킨 시기로 볼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주목을 받는 양은 줄어들었지만, 한국영화에 바쳐진 글쓰기의 양이 늘어남으로써 이는 더 많은 보상을 받았다. 해외의 영화평론가들도 한국 영화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개별 영화감독의 수준 그리고 그 전체적인 움직임의 수준 모두에서 이 새로운 세대 영화감독들의 중요한 특색이 처음으로 묘사되고 엄밀하게 검토된 것은 물론 한국에서였다. 영화평론가의 작업은, 몇몇 주요 영화제들의 프로그램 선택과 더불어서, 궁극적으로 ‘새로운 한국영화(New Korean Cinema)’의 대표적인 인물들에 성유聖油를 바르는 데 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2010년, 위기 앞에 선 평론가와 감독들

   이제, 2010년에, 한국 영화산업은 상업적 침체의 후유증을 겪고 있으며, 요즘 한국영화가 관람자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을 별로 제공하지 못한다는 일반적인 인상에 직면해 있다. 또다른 세대의 영화감독들이 출현하고 있는데, 이들은, 그들의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영화의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하는 대신 대부분 그 안에서 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른 감은 있지만, 이 세대를 그 이전 세대와 구분하는 핵심 요소들 중 하나는 그들이 받은 영향의 본질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현재 영화학교로부터 등장해 장편 데뷔작을 만드는 영화감독 세대는 전세계에서 나온 무명의 장르 영화나 예술영화에 영향을 받기보다는 박찬욱, 봉준호, 홍상수 등의 감독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젊은 한국 감독들의 작품에서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 같은 영화들에 바쳐진 오마주의 수는 진정 놀라울 정도다. 이들은 더 이상 “아버지가 없는” 세대가 아니다 ? 아버지들은 이미 출현해 산업의 꼭대기에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감독들이 애초에 영화평론가들이 차지했던 공간을 향해 나아가게 된 것은 다시 한 번 우연인가? 1990년대, 평론가들이 전세계로부터 나온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연출에 초점을 맞췄을 때, 그 시네마틱한 영향력의 절충적인 혼합체로 정의되었던 한 세대의 영화감독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나서 2000년대에, 평론가들이 한국 영화감독들에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젊고 유망한 영화감독들 또한 영감을 얻기 위해 자국 영화산업 내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산업 내에서 이런 종류의 전면적인 변화에 대해 영화평론가들에게 너무 많은 크레딧을 부여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평론가들은 어떠한 영화연출 공동체에 있어서도 통합적인 일부분이며, 그들이 표현하는 아이디어와 의견들은 우리가 깨닫는 것보다 더 깊게 울려 퍼진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번역 / 한선희(‘버라이어티’ 한국통신원)

 

<이 글의 저작권은 집필한 저작권자에게 있으며 복제 및 무단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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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달시 파켓

등록일201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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